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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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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1943년 조명암이 작사, 박시춘이 작곡해, 남인수·박향림·백년설이 부른 가요 〈혈서지원(血書志願)〉 1절이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태극기 그려 놓고 천세만세 부르자/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대한민국 국군 되기 소원합니다’. 1953년부터 국군이 부른 군가 〈혈청지원가〉다. ‘일장기’가 ‘태극기’로, ‘나라님(일왕)의 병정’이 ‘대한민국 국군’으로 바뀌었다. 같은 가사 구조와 곡조의 쌍둥이 노래다. 일본강점기 일본 해군 입대를 권유하던 노래가, 10년 뒤 한국전쟁 무렵에는 애국의 노래가 됐다. 원곡을 간과한 국가보훈처는 2006년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혈청지원가〉가 수록된 ‘추억의 군가’ 앨범을 보급했다. 보훈처의 무심함이 어이없다.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몸의 피를 내서 맹세나 결심, 청원을 글로 쓴다는 혈서. 그 뜻이 굳고 간절하다. 생명까지도 내놓겠다는 결기다. 혈서의 역사는 길다. 후한 마지막 황제 영제가 조조를 주살하라고 동승에게 혈서를 내렸던 일화가 삼국지에 나온다. 서기 199년 일이다. 우리 근현대사에도 혈서가 종종 등장한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뒤, 손가락 마디를 끊어 태극기에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썼다. 단지로 무명지가 짤막해진 안 의사의 손도장은 대의의 상징이다. 1939년 3월31일 자 만주신문에 “23세 박정희가 ‘一死以テ御奉公(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이라는 혈서를 쓰고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했다. 진위를 둘러싼 법정 공방까지 벌어졌다.

2020년 6월, 한국에 다시 혈서가 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대학교 비대면 수업이 발단이다. 학생들은 “사이버대 또는 방송통신대와 다를 게 없다”며 “그 몇 배의 등록금을 낸 건 부당하니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한 사립대 보직교수가 “그런 거(등록금 반환) 논의하려면 혈서라도 써오라” 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학생들이 직접 쓴 혈서가 잇따라 올라왔다. 제자들의 간절함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혈서 운운할 수 있었을까. 보직교수라는 그의 무심함이 어이없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