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자 다닥다닥 붙어 일했는데···러 선박에 뚫린 감천항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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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 나온 러시아 선박 아이스스트림호가 23일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 정박중이다.송봉근 기자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 나온 러시아 선박 아이스스트림호가 23일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 정박중이다.송봉근 기자

“선박 내 냉동고는 영하 25도이고, 선박 밖은 영상 30도에 육박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어떻게 일을 합니까.”

확진 판정 받은 러시아 선원과 접촉한 항만노조원 124명 #전체 노조원 중 30% 접촉…나머지 노조원도 불안감 호소 #수 준수 점검하는 부산검역소 “인력 없어 점검 불가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부산 감천항에서 근무하는 항운노조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23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검역소에서 코로나19 방역 수칙인 마스크 착용, 손 씻기, 거리 두기 등을 준수하라고 교육은 하지만 항만 산업의 특성상 현장에서 지키기 어렵다”며 “선박 물량을 하역할 때 4명이 조를 이뤄서 작업한다. 화물 대부분이 무거워서 여러 명의 작업자가 다닥다닥 붙어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2m 거리 두기는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작업자들이 대기하는 대기실도 공간이 협소해 2m 거리 두기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항운노조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2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러시아 선적의 아이스스트림호(3933t) 선원 16명과 접촉한 항운노조원은 124명이다. 감천항 조합원 406명 중 30% 수준이다.

 자가격리자 124명 가운데 107명은 출근하지 않고 자택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17명은 감천항으로 출근해 자가격리 조치에 들어갔다. 항운노조 관계자는 “23일 출근한 17명은 자택에서 자가격리를 할 수 없어 현장으로 나와 격리 조치에 들어갔다”며 “방역 당국의 지시에 따라 자가 격리자의 복귀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가격리 조치에 들어가지 않은 나머지 항운노조원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감천항에서 하역 작업을 하는 노조원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러시아 선적의 하역 작업에 투입되지 않았지만, 현장 인근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며 “하역에 참여했던 작업자들이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해외유입 환자 급증.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로나19 해외유입 환자 급증.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로나19 방역 수칙 준수 여부를 감독해야 하는 국립부산검역소는 현장 점검에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인기 국립부산검역소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특별검역절차’가 도입돼 평소보다 업무량이 4배가량 늘었다”며 “50명에 불과한 검역소 직원들의 업무 피로도가 상당하다. 현장에 수시로 나가서 방역 수칙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 소장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마자 수차례 현장에 나가서 작업자를 상대로 방역 수칙 교육을 했다”며 “검역소 직원이 점검 나갈 때만 작업자들이 마스크를 쓴 것 같다. 현장에서 일탈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점검을 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국립부산검역소는 인력 충원을 해서라도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모든 선박에 검역원이 승선해 점검하도록 방침을 바꿀 예정이다. 또 하역 작업에 투입되는 국내 인력에 대한 방역 수칙 준수 여부도 수시로 점검할 예정이다. 김 소장은 “정부에 인력 충원을 요청해 방역 수칙 준수 점검을 확대하고, 선원들의 코로나19 감염 여부도 철저하게 검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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