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구속영장 기각에 여성계 "피해자는 아직도 괴로워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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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서 부하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 부산성폭력상담소가 법원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성폭력상담소는 2일 보도자료에서 "고위공직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재판부의 성 인지 감수성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던가"라고 한탄했다.

상담소는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데 법원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지 않다", "불구속 재판에 이어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질까 두렵다"며 법원의 결정을 비판했다. "법원이 권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해야 하고, 공직의 무거움을 알릴 이정표를 세울 기회를 놓쳤다"고도 지적했다.

상담소는 피해자의 고통도 언급했다. 상담소는 보도자료에서 "피해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2차 가해로 괴로워하고 있고 언제 다시 자신의 근무 장소로 안전하게 복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피해자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는데, 가해자만 구속이 기각된 채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부산 여성계와 시민단체도 법원의 불구속 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김규리 부산여성단체협의회장은 "권력형 성추행은 지독한 범죄인데 사안의 중대성이 제대로 다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영장 기각은 법원의 성 인지 감수성 부족과 경찰 수사의 부실함 때문이 아니겠냐"고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은 "여성계에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정중한 사과도 받은 적도 없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여성단체협의회, 부산여성연대회의, 부산여성단체연합, NGO여성연합, 구군여성단체협의회 등 부산지역 5개 여성단체들이 지난달 4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거돈 전 시장의 권력형 성폭력을 규탄하고,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여성단체협의회, 부산여성연대회의, 부산여성단체연합, NGO여성연합, 구군여성단체협의회 등 부산지역 5개 여성단체들이 지난달 4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거돈 전 시장의 권력형 성폭력을 규탄하고,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안일규 부산경남미래연구원 사무처장도 "'공인'이고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에 영장 기각 결정이 나왔다면 일반인과 비교해 상당한 특혜를 준 것"이라며 "오히려 정치인이라 더 엄벌 받아야 하는데 집권당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에 빗겨 나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부산 여성단체들은 이번 사안이 공론화된 이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성범죄이며 부산시가 성평등 종합대책 마련에 실패한 결과"라고 주장해왔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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