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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사의 일기]"입모양으로 대화하던 환자, 중환자실 떠나자 기쁘고도 허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구성미 간호사의 일기 1

지난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구·경북 지역을 강타했을 때부터 지금껏 다섯 달째 경북대병원 내과중환자실을 지키는 간호사가 있다. 올해로 17년 차 베테랑급 구성미 간호사(39·여)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투의 현장에서 구 간호사가 써내려가는 일기를 연재한다.

야간 근무를 위한 출근길,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걷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은 흘러 이제는 반팔을 입어도 더운 계절이 다가왔다.

내가 이용하는 출입구 옆, 응급실 앞에는 여느 때처럼 구급차와 환자들이 있지만 다른 때보다 한적해 보인다.

구성미 간호사(39·여)가 근무하는 경북대병원 모습. 사진 구성미 간호사

구성미 간호사(39·여)가 근무하는 경북대병원 모습. 사진 구성미 간호사

그렇게 응급실 입구를 스쳐 내 눈이 향하는 곳은 응급실 출입문 맞은편에 있는 ‘선별진료소’라고 쓰인 컨테이너다. 예전에는 응급실 안에 중증도 높은 환자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간호하는 지금은 응급실이 아니라 선별진료소의 대기 줄이 있느냐 없느냐가 나에겐 더 중요하다.

다행히 오늘도 어제와 같이 컨테이너 안의 불은 켜져 있지만 문은 닫혀있고, 대기하는 환자가 없음에 안도하며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병원 출입문을 지나 중환자실로 향한다.

인계를 받기 위해 간호 스테이션으로 가니 창문 너머에 어제까지 있었던 환자의 병상이 비어 있다. 분명 어제 퇴근 전까지도 ‘내일 만나자’ 인사하던 환자의 자리였는데 지금은 깨끗이 비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으니 격리가 해제돼 일반병실로 전실했다고 한다.

구성미 경북대병원 간호사(39·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 구성미 간호사

구성미 경북대병원 간호사(39·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 구성미 간호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지내다가 회복돼 인공호흡기 없이도 안정적인 자가 호흡이 가능해져 전실할 수 있는 병실을 기다리던 환자였다. 다행히 오늘까지도 전반적인 컨디션이 나빠지지 않아 일반병실로 갈 수 있었다. 의식없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기도 했고 격리 방에 홀로 있어서인지 환자는 불안감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격리환자가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옆에서 불안감이 안 들게 함께 있으면 되지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어야 만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두 개의 창문 너머로만 환자를 대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들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사실 마음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을 향한 두려움과 격리 방에서의 공포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주어진 가능한 시간 동안은 대화를 나누려고 했었다. 환자는 장기간의 인공호흡기 사용으로 기관절개술을 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환자가 완전하지 않은 몸으로 겨우 짜낸 힘으로 써 내려 간 글씨와 그의 입 모양을 보고 길지 않는 대화를 했다. 긴 대화를 이어가진 못했지만 짧은 단어로 국회의원 선거 얘기도 했었고 고향이 어딘지 특별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얘기들을 이어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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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짜증이 나셨는지 대화하기 싫다며 손사래치고 거부 의사를 표현하다가도 불편한 부분을 알아주면 금세 웃으며 얘기 나누었던 환자였다. 곧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며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입원 기간이 길고 상황이 특별해서 인지 다른 어느 때보다 중환자실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기쁘면서도 허전한 마음이 든다.

이곳을 나가 만나지 못하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보지 않아도 그분 얼굴에 피울 웃음꽃이 눈에 선하다. 외롭던 이곳에서 탈출했으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는 아프지 않고 항상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구성미 간호사(39·여)가 근무하는 경북대병원에 쏟아진 응원의 편지들. 사진 구성미 간호사

구성미 간호사(39·여)가 근무하는 경북대병원에 쏟아진 응원의 편지들. 사진 구성미 간호사

정리=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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