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대책위원회 출범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중순 피부암 선고를 받은 李모(58.서울 신사동) 씨는 곧바로 치료를 위해 S병원을 찾았지만 "병실이 없으니 집에서 기다리라" 는 답변을 들었다.

7월초 다시 입원했으나 21일간 항암치료만 받다가 강제퇴원당했다.

지난달 중순 병세가 악화해 병원을 찾았지만 폐업으로 응급실 바닥에 누운 채 치료를 제대로 못받았다. 결국 李씨는 지난 4일 사망했다.

지난 2월 위암 판정을 받은 柳모(45.전남 여수시) 씨는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의료계 폐업으로 수술뿐만 아니라 치료조차 못받았다.

지난 19일 柳씨의 사망으로 슬픔 속에 장례를 치르던 가족들은 병원측으로부터 "10월 예정된 수술이 다시 연기됐다" 는 연락을 받고 다시 한번 분노를 터뜨려야 했다.

담낭암을 앓고 있는 張모(36.경기도 군포시 대야미동) 씨는 6월 말 암선고 이후 병원 폐업으로 지금까지 병원 세 곳을 전전했다.

7월말 옮겨온 S병원에선 응급실 바닥에서 10여일간 지내야 했다. 지난 17일 입원한 張씨는 아직까지 정상적인 치료를 못받고 있으며, 합병증까지 생겨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의료계 장기 폐업.파업으로 치료 시기가 늦어지거나 목숨을 위협받게 된 암환자들과 환자 가족들이 21일 치료받을 권리를 요구하며 ´의사 파업에 따른 치료연기 암환자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이정갑 등) 를 발족,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21일 서울 중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정해진 날짜에 못받거나 입원을 거부당해 응급실이나 집에서 파업이 끝날 때만을 기다리고 있다" 며 "의료계와 정부에 강력한 암환자 대책을 촉구한다" 고 밝혔다.

대책위는 "의료계가 지난 14일 암환자를 위한 ´암환자 소위´ 를 구성, 수술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치료 일정을 통보받지 못한 환자가 많다" 며 "의료계는 10월 6일로 예정된 의료계 총폐업을 철회하라" 고 요구했다.

암치료를 못받아 아버지를 잃은 李지묘(28.여) 씨는 "20일간 응급실 바닥에서 치료는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죽어간 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하다" 며 "어떻게 의사들이 암환자들을 극도의 절망감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느냐" 며 울음을 터뜨렸다.

대책위는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02-718-8001) 과 경실련(02-754-8842) 을 통해 암환자에 관한 상담을 벌이기로 했다.

대책위는 21일 국무총리실과 의사협회를 직접 방문해 치료가 연기된 암환자 사례 11건을 전달했다.

대책위 이정갑 대표는 "정부가 의료계 파업으로 인한 암환자들의 고충을 외면하고 있다" 며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의료계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의료발전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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