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없이 신청’, ‘기부 신청’
A 카드사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화면에 나온 두 개의 버튼이다. 기부 없이 신청 버튼은 흰색이고 기부 신청 버튼은 파란색이었다.
행안부 “다운 막기 위한 화면 배치” #수정 불가→당일 수정→이후도 수정
긴급재난지원금 신용·체크카드 온라인 신청 둘째 날인 12일 화요일, 출생연도 끝자리 2인 기자가 오전 11시쯤 직접 지원금을 신청해봤다. 신청 화면에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한 뒤 휴대전화로 본인 인증을 마쳤다. 필수 약관 아래쪽에 ‘다음 페이지에서 원하시는 금액만큼을 기부하실 수 있습니다. 기부는 선택사항이다’라는 참고 문구가 있었다.
약관에 동의하고 신청 버튼을 누르자 다음 페이지에 지원금액 60만원이 나오고 기부금액을 적는 칸이 나왔다. 전체기부, +10만원, +1만원 버튼도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에 위에서 말한 두 개의 버튼이 나왔다. 왜 기부 신청 버튼만 파란색으로 눈에 띄게 표시돼 있는지, 왜 ‘지원금 신청’이 아닌 ‘기부 신청’이라는 문구가 나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카드사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왜 버튼 색깔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며 “지원금 신청과 관련해 행정안전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지침을 받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B 카드사에서 지원금을 신청한 직장인 C씨도 “자칫하면 기부 버튼을 누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모바일 메신저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재난지원금 신청 시 실수로 기부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글들이 퍼졌다.
대부분의 카드사는 지원금 신청 후 변경이나 취소를 할 수 없다고 신청 화면에 공지하고 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지원금 접수를 시작하기 전 행안부에서 한번 신청하면 취소가 어려운 것으로 얘기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접수 시작 첫날인 11일 실수로 기부했다며 취소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자 행안부는 방침을 변경해 신청 당일만 취소할 수 있게 했다. 다음날 새벽 카드사가 기부 자료를 취합해 행안부에 보내는데 그 이후 취소가 이뤄지면 집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한카드는 콜센터를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관계로 당일 미처 취소하지 못한 고객이 있을 것으로 봐 신청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취소 요청을 받고 있다. 삼성카드, 현대카드는 오후 11시 30분까지 콜센터에서 취소 신청을 받는다. KB국민카드, 하나카드, 비씨카드, 롯데카드, NH농협카드, 우리카드는 카드사 웹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에서 기부 신청 내용을 바꿀 수 있다.
기부 변경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졸지에 전액 기부가 돼 황당했다” “다급하고 힘든데 기부 칸을 만들어 혼란스럽다” 등의 문제 제기는 계속됐다. “정부가 기부를 위한 피싱(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알아내 이용하는 사기 수법) 사이트를 만든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등장했다.
행안부는 이런 논란에 관해 “신청 시스템을 만들 때, 다운을 막기 위해 최대한 신청 과정을 간소화하려고 한 페이지에 지원금 액수와 기부 의사를 묻는 칸을 함께 넣기로 지침을 정한 것”이라며 “카드사에 문구·버튼 디자인이나 색상 등까지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페이지에 지원금액과 기부 두 내용을 함께 담은 것은 시스템 다운 방지를 위해서지 기부 활성화 목적이 아니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논란이 커지자 행안부는 이날 오후 설명자료를 내고 13일부터 전 카드사에 전액 기부 선택 시 팝업창으로 재차 확인 후 ‘기부하지 않음’도 선택할 수 있게 시스템 개선을 요청했으며 당일 기부 내용을 수정하지 못하면 추후 주민센터 등에서 수정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