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실수' 부른 지원금 신청 화면…정부가 그렇게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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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긴급 재난지원금이 이번엔 ‘실수 기부’ 논란에 빠졌다. 정부 지침에 따라 각 카드사가 재난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절차를 분리하지 않으면서다.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신청 화면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한 카드사 메인화면에 띄워진 지원금 접수 안내문. 연합뉴스

한 카드사 메인화면에 띄워진 지원금 접수 안내문. 연합뉴스

재난지원금 신청 이틀 차인 12일 각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기부할 생각이 없었는데 기부를 했다. 취소할 방법이 없냐”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취소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청원도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수령 금액 확인하는 것처럼 돼 있어 금액을 적었는데 기부된다는 걸 다음날 알게 됐다”며 “(재난지원금으로) 조금이나마 숨 쉴 수 있어 좋아했는데, 하루만 취소가 가능하게 한 건 너무 한 것 같다”는 내용이다.

현재 재난지원금은 기부의사를 밝혀야 신청이 마무리된다. 신청화면 캡처.

현재 재난지원금은 기부의사를 밝혀야 신청이 마무리된다. 신청화면 캡처.

이런 혼선이 생긴 건 지원금을 신청할 때 기부 의사와 금액 등을 밝혀야 신청 절차가 마무리되도록 한 방식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액 기부 버튼을 잘못 누르거나, 기부 금액을 본인이 수령하는 금액으로 착각해 액수를 입력하면 기부 처리가 된다.

당초 카드업계는 이런 혼선을 우려해 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화면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지원금 신청 절차를 마무리한 고객 중 기부할 의사가 있는 경우에만 별도로 신청 메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등 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지원금 신청 화면 구성이 바뀌게 됐다. 정부가 지원금 신청 절차 내에 기부 절차를 포함하라는 지침을 내리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인 만큼 정부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청 안하면 자동 기부…신청 때 기부 의사 또 물어 혼란  

업계에서는 신청과 기부를 한 화면에 담은 건 기부 유도를 위한 일종의 장치라는 분석도 있다. 일종의 ‘넛지(nudge, 팔꿈치로 찌른다는 뜻으로 간접적 유도의 의미)’ 효과다.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자동 기부 처리되는 만큼, 온라인으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오는 고객은 기부 의사가 적다”며 “그런데도 굳이 신청할 때 기부 의사를 물어보는 건 조금이라도 기부를 늘리려는 생각이 깔려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만 일부에선 “별도의 화면으로 분리할 경우 트래픽이 늘어나 서버에 부담이 생긴다는 의견이 있어 신청과 기부를 한 화면에 담는 쪽으로 한 것으로 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수로 재난지원금을 기부했다는 화면. SNS 캡처

실수로 재난지원금을 기부했다는 화면. SNS 캡처

실수로 기부하더라도 당일 취소는 가능하다. KB국민·롯데·하나·BC(우리)·NH농협카드는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에서 수정이 가능하고, 신한·삼성·현대카드는 일단 콜센터나 점포를 통해야 한다. 신한카드는 다음날 오후 6시까지 수정 신청을 받는다. 그나마 당일 취소가 가능한 것도 업계와 정부 간의 실무 절차 덕분이다. 카드사는 재난지원금 신청 자료를 모아 매일 오후 11시 30분 일제히 정부에 보내는데, 이 시간 전에는 카드사가 기부 내역 등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와 카드사는 기부 의사를 추가로 확인하는 별도의 알림창을 띄우는 등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외에 취소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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