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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꿰찬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새로운 ‘헨리8세’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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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호 26면

미래 Big Questions 〈14〉 권력

6명의 여인과 결혼한 남자. 2명은 참수형을 당하고, 2번의 결혼은 무효가 되었으며, 1명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마지막 부인은 남자가 먼저 사망한 덕분에 살아남는다. 헨리 8세 영국 왕 이야기다. 튜더 가문 헨리의 결혼사는 단순히 귀족 한 명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만이 아니다. 첫째 부인 캐서린 (Catherine of Aragon 또는 Catalina)은 당시 최강대국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의 이모였다. 교황과 황제 모두 절대 반대한 이혼. 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앤 볼레인(Anne Boleyn)과 결혼하고 싶었던 헨리는 로마천주교를 포기하고 본인 스스로가 교주인 영국국교회, 오늘날의 성공회를 설립한다.

말 한마디면 아내·신하 등 참수 #두려워도 큰 보상 기대 덕 유지 #누구나 완벽한 미래 예측 못 해 #어른·전문가 경험에 ‘아웃소싱’ #정보 가진 쪽이 타인 행동 좌우

‘헨리 8세’, 한스 홀바인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사본. [사진 리버풀 워커 미술관]

‘헨리 8세’, 한스 홀바인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사본. [사진 리버풀 워커 미술관]

헨리 8세의 피해자는 캐서린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스승이자 총리였던 토머스 울지 추기경은 교황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반역죄’로 처벌됐고,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토머스 모어는 앤 볼레인을 여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죄로 참수형을 당한다. 추기경 울지를 몰락시켰던 앤 볼레인의 가족들은 결혼 3년 만에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 헨리에게 숙청당하고, 앤과 앤의 측근들을 반역죄인으로 참수시킨 헨리의 수석비서관 토머스 크롬웰 역시 몇 년 후 반역죄로 참수당한다.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도 참수형

헨리 8세의 개인 비서였던 브라이언 튜크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두렵지 않았을까? 반역죄로 런던탑에서 오늘 참수형을 기다리는 죄인들은 어제까지 헨리와 함께 사냥 나갔던 친구들이었고, 오늘 헨리의 친구와 가족들 역시 언제든지 참수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숙청과 우정과 참수와 사랑의 반복. 잉글랜드는 헨리 튜더라는 한 남자를 위한, 그리고 그 한 남자만을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되던 절대왕정 국가였다. 이제 슬슬 궁금해진다. 어떻게 한 사람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말 한마디면 언제든지 아내와 친척과 백성의 목을 자를 수 있었던 헨리. 큰 덩치로 유명했지만, 성인 남자 몇이면 충분히 제압 가능했을 헨리는 남들보다 수백 배 힘이 강하지도, 특별히 더 영리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한스 홀바인 ‘브라이언 튜크’(1527). [사진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한스 홀바인 ‘브라이언 튜크’(1527). [사진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권력이란 무엇일까? 우선 단순하게 “타인의 행동이나 생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능력”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아이들은 부모 말을 들어야 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따라야 하고, 신도는 교주를, 국민은 왕을, 그리고 인간은 신을 따라야 하는 뭐 그런 관계 말이다. 한번 질문해보자. 도대체 왜 인간은 신을, 국민은 왕을, 그리고 아이는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할까? 심리학자 프렌치(John French)와 레이븐(Bertram Raven)은 권력이 유지될 수 있는 총 6가지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①강제성 (말 안 들으면 매 맞을 수 있다). ②보상 (말 잘 들으면 더 많은 용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③정당성 (정부는 법을 시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④참고적 (BTS 곡에 등장하는 책을 읽고 싶다). ⑤전문성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극복하려면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⑥정보력 (나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여의도 증권사들의 의견을 듣자) 때문에 인간은 타인의 말을 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권력은 대부분 여러 이유의 조합이겠다. 헨리 8세의 신하들은 참수형을 두려워했겠지만, 동시에 왕으로부터 막대한 보상 역시 기대할 수 있었다. 더구나 잉글랜드 국왕으로 헨리의 권력은 정당성까지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어쩌면 프렌치와 레이븐의 6가지 이유 모두 결국 ‘정보’라는 공통점의 다른 이름이지 아닐까?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들은 무엇일까? 물론 우선은 ‘의식주’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의식주만큼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내일 사냥은 성공적일까? 한발 앞으로 더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손에 잡은 돌을 던지면 어디로 날아갈까? 어쩌면 인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의 꼬리 물기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의 가장 핵심적 기능은 ‘미래 예측’이라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진화적으로 오래된 중뇌와 간뇌 등은 현재와 과거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가장 최근 만들어진 대뇌는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가장 최적화된 결정을 오늘의 나를 통해 실행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완벽한 미래 예측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래 예측이란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가설한다면 우선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과 인생은 변곡점과 특이점이라는 예측불가능한 함정으로 가득하다. 과거는 미래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지만, 미래는 반복성과 랜덤의 조합이다.

미래예측을 시도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아웃소싱’이다. 과거 데이터만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면, 내가 앞으로 살아남아야 할 미래가 이미 과거인 타인에게 내 판단을 위탁해볼 수 있겠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맹수로 가득한 정글을 처음 경험하는 나에겐 모든 것이 예측불가능한 미래 위험 요소들이지만, 이미 정글을 여러 번 경험한 이들에겐 기억 가능한 과거 사건들이다. 나의 미래를 스스로 예측하긴 어렵지만, 내가 경험할 미래를 이미 경험한 이들의 과거를 통해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볼 수는 있겠다.

IT 기업의 권력은 ‘감시 자본주의’

쇼샤나 주보프 교수

쇼샤나 주보프 교수

그렇다면 ‘권력’이란 사실 정보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자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헨리 8세의 절대 권력은 그를 통한 ‘절대 확신’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을까? 헨리라는 공통변수를 통해 울지, 모어, 앤, 크롬웰은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가 -좋든 나쁘든- 예측가능해 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만약 권력의 핵심이 정보라면, 정보의 미래는 동시에 권력의 미래이겠다. 나에 대한 정보는 동시에 내 미래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의미한다.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나보다 더 정확히 내가 선호하는 영화와 책을 추천해준다. 하버드 경영대학교 쇼샤나 주보프 교수는 그렇기에 소비자의 데이터를 모으고 예측하는 다국적 IT 기업들이 최근 새로운 형태의 권력인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를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약한 호모 사피엔스. 나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의 미래가 이미 그들의 과거일 것이라는 믿음 아래 부모와 전문가와 정부에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아웃소싱했다. 이제 정부, 교사, 부모보다 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기업에 우리는 또 미래 선택권과 판단을 아웃소싱하고 있기에, 실리콘 밸리 기업은 21세기의 새로운 헨리 8세가 돼 가고 있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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