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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행은 누군가의 행복’…코로나 음모론도 뇌의 착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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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호 26면

미래 Big Questions 〈15〉 초연결사회의 음모론

산들로 보티첼리(1445~1510), ‘비너스와 마르스’(1485). [국립미술관]

산들로 보티첼리(1445~1510), ‘비너스와 마르스’(1485). [국립미술관]

아무리 능력 있어도 이성에게 인기 없는 건 과학자와 공학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미국 인기 시트콤 ‘빅뱅 이론’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주제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듯하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무적의 무기들을 만들었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아내로 삼았지만, 못생기고 다리까지 저는 ‘공학자의 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비너스의 관심은 오로지 마르스뿐이었다. 사랑의 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의 불륜은 올림푸스 신들 사이 최고의 가십 거리였을 것이다.

정체불명 전쟁·대공황·팬데믹 #누가 득 보는가 의문이 음모론 낳아 #중세 유럽, 이방인에게 원인 돌려 #반인류적 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져 #무한 상상 가능한 인간 뇌의 역기능 #갈수록 복합하게 얽힐 미래 세상 #더 초현실적 페이크 뉴스 판칠 것

가십은 ‘불륜 방지’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

소문, 험담, 뒷말, 가십. 왜 우리는 남들에 관해 이야기할까? 진화심리학에서는 가십의 기원을 ‘불륜 방지’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으로도 해석한다. 우선 ‘이기적 유전자’ 프레임으로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넘겨주려는 진화적 목표를 기반으로 한다고 가설해 보자.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본인이 난 아이가 유전적으로 자신의 자식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여자와는 달리 남자의 확신은 100%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의 유전자를 위해 낭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민감한 내용인 만큼 정확한 결과는 얻기 어렵겠지만, 대부분 조사에 따르면 결혼한 미국 남성의 20~40%, 그리고 여성의 20~25%가 불륜 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벌어진 락다운반대운동. [런던]

미국에서 벌어진 락다운반대운동. [런던]

가십의 기원은 호모 사피엔스의 평판관리 알고리즘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더구나 앞으로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할 파트너의 미래 마음과 성향을 오늘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답은 데이터다.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소비자 선호도를 추론하듯, 우리는 타인의 과거 행동을 통해 그들의 미래 선택을 예측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이다.  여기서 가십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타인의 모든 행동과 선택을 직접 관찰할 수는 없지만, 소문과 가십을 통해 추론해볼 수는 있다. 바람둥이로 소문난 남자와 여자를 유전적인 관점만으론 파트너로 삼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시시콜콜한 개인적 가십을 떠나 집단적 소문의 기능은 무엇일까? 우선 소문이란 공식 뉴스 채널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최적화된 정보 수집 채널이라고 해석해보자. ‘세계화’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 수천, 수만 년 동안 인류는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대부분 유전적 친척 관계인 작은 집단에서 살았던 인간에게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의 끝은 동시에 세상의 끝이기도 했다. 서로 알고 의지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을 넘는 순간 미지의 세상이 시작된다. 고향은 밝고 따뜻하지만, 타향은 어둡고 춥다. 언제 어디서 무서운 맹수나 독사가 나타날지 모른다. 그곳엔 맹수와 독사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바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방인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락다운반대운동. [런던]

미국에서 벌어진 락다운반대운동. [런던]

모르는 사람, 알 수 없는 인간, 족보와 혈통이 없는 사람, 특히 자신의 마을을 떠난 이들은 수상하다. 왜 안전한 마을을 떠나 이곳으로 온 걸까? 그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없는 걸 내가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외부인은 언제든지 나와 내 가족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고생하고 굶주리며 아낀 식량을 잃고, 아내와 딸들 역시 그들에게 빼앗길 수 있다. 준비해야 한다. 산과 강 넘어 더 넓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행복한 일엔 별로 관심 없다. 남들에게 좋은 일 있어 봐야 내 배가 부르지는 않다. 관심 있는 일은 불행과 위협이다. 우리 마을에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알아야 준비할 수 있겠다. 만약 걱정했던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타인의 불행이 다행히 나의 불행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누구보다 더 안심하고 행복할 것이다.

미국 작가 수잰 손택(Susan Sontag)의 말대로 ‘타인의 고통’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인 이유다.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타인의 불행을 즐긴다는 표현까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아무리 준비하고 조심해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실패와 슬픔으로 가득하니 말이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해도 아이들은 언제나 배고픔을 하소연하고, 전쟁과 질병은 잠시의 작은 행복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이 세상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왜 이렇게도 힘든 걸까? 내가 모르는 불행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원인과 이유 없이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하기에, 인간은 언제나 이유와 원인을 찾으려 한다. 특히 기근, 전쟁, 대공황, 팬데믹 같은 거시적인 현상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나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는데? 나는 박쥐를 먹지도 않았는데? 나는 언제나 결백하다고 믿고 싶은 우리. 지금까지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행복으로 삼았기 때문일까? 이제 우리의 고통은 타인의 행복일 것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쿠이 보노?(cui bono)”. 고대 로마인들이 던졌던 질문이다. 원인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면, 가장 먼저 그 사건이 누구에게 도움되는지 질문하라는 것이다. 음모론의 역사적 탄생이었다.

음모론,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설명 위한 것

카니자 (Kanizsa) 삼각형(왼쪽), 에렌페스트 (Ehrenfest) 서클(오른쪽). [런던]

카니자 (Kanizsa) 삼각형(왼쪽), 에렌페스트 (Ehrenfest) 서클(오른쪽). [런던]

굶주림과 전쟁과 전염병이 끝없이 반복했던 중세기에 유럽인들은 본인의 불행을 타인의 존재를 통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고향도 국가도 없는 ‘영원한 이방인’인 그들이야말로 모든 불행과 재난의 원인이지 않을까? 농사를 망치면 유대인 때문이고, 마을에서 병이 돌면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기 때문이란다. 언젠가부터 유대인은 수상했다. 혹시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 모든 전쟁과 대공황과 질병 뒤에는 유럽인들을 노예화하려는 유대인의 음모가 있지 않을까? 엄청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음모의 증거가 없으면 만들어내면 된다. 1903년 러시아에서 출간된 『시온 장로 의정서』라는 위서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유대인들의 ‘페이크 회의록’을 소개하기도 했다.

현대 과학은 진화적,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우연의 결과를 원인으로 제안하지만, 역시 인간은 원인과 의도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삼각형과 서클이 착시현상을 통해 보이기 시작하듯,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들의 ‘깊은 이유’들이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었던 것이었구나! 우리의 불행은 누군가의 이익이자 행복이었구나! 대부분 음모론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뇌가 일으킨 인지적 착시현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의 뇌는 아름다움과 상상력의 기반이지만, 동시에 반인류적 대학살과 비이성적 음모론의 기원이다. 백신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빌 게이츠 재단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퍼트렸다는 황당한 음모론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끄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와 함께 더 거시적이고 더 얽힌 인과관계들로 가득할 미래 세상에서 인류는 존재하지 않는 의도와 패턴을 보기 위해 더 초현실적인 페이크 뉴스와 음모론에 집착할 것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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