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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받았는데 "돈 없어 못 준다"···믿었던 코로나 대출의 배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남 진주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신모(44)씨는 정부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7000만원 한도의 초저금리(연 1.5%) 코로나19 대출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출 신청을 준비했다. 3월 초 소상공인진흥재단으로부터 소상공인 확인서를 발급받아 경남신용보증재단에 대출 보증 신청서를 넣었고, 약 한 달 뒤인 지난달 3일 4000만원의 대출 보증서를 발급받았다. 신씨는 보증서를 들고 곧장 코로나19 대출 업무대리 지정은행인 신한은행에 달려가 대출을 신청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지난 1일 신씨는 은행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부에서 돈이 안 나온다, 언제 어떻게 나올지도 잘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신씨는 "정부 보증재단으로부터 보증서까지 멀쩡히 받은 대출인데 갑자기 실행이 어렵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석 달 치 월세를 포함해 가게에 밀려있는 돈이 수천만원인데 계속 기다리다 안 되면 제2금융권 대출을 끌어다 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미술교습소를 운영하는 이모(35)씨도 지난달 28일 서울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4300만원어치 코로나19 대출 보증이 승인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관련 서류를 구비해 지난 3월 17일 신청한 보증이었다. 문자를 받은 다음날 보증서를 들고 대출을 받으러 하나은행에 방문한 이씨는 은행원으로부터 "정책자금이 전부 소진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얘길 들었다. 은행원은 이씨에게 "계속 기다리기 어려우면 연이율 3.4%인 다른 대출 상품을 이용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민원인들이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민원인들이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출 한도 2000만원으로 줄었는데 7000만원 내 보증 승인

신씨와 이씨처럼 코로나19 대출 심사를 통과해 보증서까지 수령했는데도 정작 대출 실행이 막혀버린 소상공인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신청한 것은 정부가 2조7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진흥기금으로 마련한 저신용(신용등급 7등급 이하)자 대상 대출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 외에도 중신용(4~6등급)자 대상 기업은행(5조8000억원) 대출 프로그램과 고신용(1~3등급)자 대상 시중은행 이차보전(3조5000억원) 대출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

문제는 소상공인진흥기금 대출 프로그램에 수요가 몰리면서 발생했다. 정부는 당초 연 1.5% 초저금리와 최대 7000만원 대출 한도를 적용해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수요가 몰리면서 대출 신청분이 정부 소상공인진흥기금 할당 예산을 넘겨버렸다. 정부는 대출 개시 이틀만인 지난 3월 27일 이 프로그램의 대출 한도를 2000만원으로 깎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이미 신청서를 접수한 대출분에 대해서도 2000만원의 한도를 소급 적용키로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지역신용보증재단에 이미 접수된 7000만원 한도 대출보증 신청이 4월 말까지 계속 승인된 것이다. 소상공인들은 2000만원을 초과한 금액의 대출 보증서를 들고 은행을 찾고, 은행은 정부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 계속 연출됐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우리도 본사에 대출자금을 빨리 대달라고 요구해봤지만, 본사에선 정부가 자금을 못 주고 있다며 기다려달라고만 한다"며 "중간에 끼어 고객들에게 민원을 들어야 하는 우리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보증 받은 경우 시중은행 대출 방안 준비 중"

소상공인 코로나19 대출 정책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다. 대출 기금을 관리하는 소상공인진흥공단과 대출 보증서 발급기관인 각 지역신용보증재단 업무를 총괄하는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모두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에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같은 중기부 소관 기관이긴 하지만 소상공인진흥공단은 부처 내 소상공인정책과에서 관리하고 있고, 신용보증재단중앙회는 기업금융과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처음엔 중기부 내에서 합의해서 양 기관이 다 7000만원 한도로 일을 진행했지만, 수요가 몰려 한도를 2000만원으로 전환키로 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자금을 다 소진한 정부는 지역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고도 아직 대출을 받지 못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시중은행 예산을 별도 책정해 초저금리 대출을 실행할 계획이다. 금리는 1.5% 수준을 유지하지만 한도는 3000만원이 최대다. 앞선 보증은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미 7000만원 한도 내로 보증서를 발급받은 소상공인들에게는 새로운 동의서를 받을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접수가 돼서 지역신용보증재단 보증까지 받았는데도 정부 예산이 없어 대출이 못 나가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미 발급된 지역신용보증재단 보증서를 가지고 시중은행 자금으로 대출을 진행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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