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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추적 앱' 망설이는 유럽···코로나 방역 뜻밖의 갈등

중앙일보

입력

“코로나19 확산 방지냐, 개인정보보호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소세에 접어든 유럽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 감염 동선을 추적하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다. 코로나19 ‘추적 앱’은 사용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경고음을 울린다. 감염자와의 접촉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빨리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재확산이 우려되는 만큼 봉쇄완화 조치 일환으로 추적 앱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개인정보가 기록·저장·공개된다는 것이다.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유럽이 고민에 빠진 이유다. 유럽 각국은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호주 정부가 개발한 코로나 19 추적 앱. [EPA=연합뉴스]

호주 정부가 개발한 코로나 19 추적 앱. [EPA=연합뉴스]

개인정보를 한 곳에-중앙집중형 

앱에 적용되는 기술은 크게 ‘중앙집중형’과 ‘분산형’ 두 가지로 나뉜다. 중앙집중형은 정보를 한데 모아 한 서버에 저장하는 반면 분산형은 사용자 사이에서 정보를 교환한다.

유럽 국가 중 최초로 코로나19 추적 앱을 출시한 노르웨이는 중앙집중형을 선택했다. 4월16일 출시된 추적 앱 ‘스미트스탑’(Smittestop)은 위성위치확인 시스템(GPS)과 단거리 무선통신 기술인 블루투스를 이용해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중앙서버에 저장한다.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기록해 뒀다가 감염자와 접촉했던 것으로 확인되면 자동으로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스위스 정부가 분산형 기술을 이용해 개발 중인 코로나19 추적 앱. [AP=연합뉴스]

스위스 정부가 분산형 기술을 이용해 개발 중인 코로나19 추적 앱. [AP=연합뉴스]

문제는 개인정보가 장기간 저장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중앙서버에 저장된 개인정보가 어떻게 사용될지 모른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여전히 추적 앱을 사용할지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추적 앱 ‘스탑코비드’(StopCovid)를 개발 중이나 출시 여부를 두고는 이견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28일로 예정했던 스탑코비드 관련 토론을 잠정 연기했다. 에두아르 필립 프랑스 총리는 “추적 앱을 논의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찬반 투표를 제안했다. 앱 사용이 가져올 개인 자유 침해 문제와 코로나19 종식 후 데이터 악용을 논의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추적 앱의 효과성을 이유로 중앙집중형 방식을 선택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산하 디지털혁신부서인 NHSX의 크리스토프 프레이저 자문 교수는 지난달 27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추적 앱의 목적인 감염 위험 통보 측면에서는 중앙집중형 방식이 더 유용하다”고 말했다.

사용자 간 정보교환-분산형 

독일·이탈리아·스위스·오스트리아는 구글·애플이 함께 준비 중인 코로나 추적 앱 기술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에 주목한다. 이른바 분산형 방식이다. 독일은 추적 앱 개발 초기 중앙집중형을 선택했으나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제기되자 구글과 애플의 방식을 차용하겠다고 밝혔다.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도 독일과 함께 구글·애플의 기술을 적용한 추적 앱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글과 애플이 코로나19 추적앱 개발을 위해 손을 잡았다. [로이터=연합뉴스]

구글과 애플이 코로나19 추적앱 개발을 위해 손을 잡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분산형 기술은 각 휴대전화가 보유한 코드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일정범위 안에 위치한 사람들끼리 블루투스를 이용해 휴대전화 코드를 주고받는다. 그중 한 사람이 감염돼 앱 정보를 업데이트하면 그 사람의 코드가 저장된 이들에게 메시지가 전송된다. 과거 접촉했던 사람 중에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메시지다.

감염자와 코드를 교환했던 적이 있느냐만을 두고 경고를 보내기 때문에 사용자 이름, 주소, 전화번호, 접촉 지점 등은 저장되지 않는다. 또 코드가 수시로 자동 변환돼 정보유출 문제도 낮출 수 있다. 다만 감염 위험 확률은 구별하지 못한다. 잠깐 스치기만 해도 코드가 교환돼 감염 가능성이 낮은 사람에게도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한계가 있다. 또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앱을 설치해야 하므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발 빅브라더 우려도

추적 앱이 출시되더라도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앱을 사용하려면 우선 사용자가 직접 앱을 다운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 강제할 경우 정부 개입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과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겪은 유럽은 '코로나19발 빅브라더'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감염자 동선 파악을 위한 추적 앱을 허용한다면서도 “사용자 휴대전화 위치를 위성으로 추적하는 GPS가 아닌 근거리 전파를 이용하는 블루투스를 이용하라”고 권고했다. 또 앱을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설치하고 감염자 정보를 익명으로 처리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그러나 앱 사용을 자율에 맡기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앱을 설치하고 활성화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정보가 쌓이고 교환도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옥스퍼드 대학 빅데이터 연구소의 크리스토프 페레이저 교수는 “추적 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약 60% 이상이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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