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년 전만도 못한 세계...1911년 중국 만주 페스트 창궐 당시 12개국은 모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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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만주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당시 방역복을 찍은 사진. [트위터 캡처]

1911년 만주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당시 방역복을 찍은 사진. [트위터 캡처]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지난 1911년 중국 만주 지역에서 약 6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 사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중국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페스트회의를 열었고, 이곳에서는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이 모여 전염병 확산의 원인과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반면 오늘날 신종 코로나 대응에서는 각국이 자국의 방역에만 골몰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없었던 110년 전보다 세계가 더욱 분열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11년 중국발 페스트 발생, 6만명 사망    

19일 미국 CNN방송은 신종 코로나 사태를 지난 1911년 발생한 중국 만주 지역 페스트 사태와 비교했다. 보도에 따르면, 1910년 9월 당시 중국인 청나라와 러시아의 국경 지역에서 ‘폐페스트’가 발생했다. 러시아 지역 국경 부근에서 일하던 중국인 목수 중 처음 환자가 발생한 뒤,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집단 거주했던 노동자와 수렵꾼 사이에서 페스트가 확산했다.

그해 10월에는 흑룡강성 만주리(滿洲里)로 확산, 3개월 동안 만주리에서 392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후 페스트는 만주리에서 하얼빈, 장춘, 길림 등 중국의 철도선을 따라 각지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만주에서 이 페스트는 1910~1911년 6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집계된다. 사실 그 이후에도 거의 매년 발생하면서 특히 1917~18년 선페스트, 1920~21년 폐페스트가 크게 유행했고 각각 중국에서만 1만6000여명과 900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12개국 33명의 전문가, 중국으로 모여들다  

이때 청나라는 국제사회에 손을 내미는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했다. 1911년 4월 3일 봉천(현재 선양)에서는 각국에서 온 수십여 명의 의사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했다. 바로 이 페스트 때문이었다.

이 회의에는 12개 국가의 전염병 연구자 33명이 참여했다. 회의는 26일간 계속됐다. 이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국제페스트회의이자,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국제과학회의로 평가받고 있다.

1910년과 1915년 사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만국 페스트연구회 우롄더 회장의 모습. 내과의사인 우회장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마스크를 최초로 사용하도록 해 수많은 인명을 구한 페스트 방역의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의회 도서관=AP]

1910년과 1915년 사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만국 페스트연구회 우롄더 회장의 모습. 내과의사인 우회장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마스크를 최초로 사용하도록 해 수많은 인명을 구한 페스트 방역의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의회 도서관=AP]

'만국 페스트연구회'를 결성한 참석자들은 '폐페스트'라는 새로운 질병을 발견한 우롄더(吳連德)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우롄더 회장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마스크를 최초로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한 페스트 방역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나라는 당시 긴장 관계를 유지했던 러시아와도 협력했다. 러시아도 감염자 수용소를 만들고 교통수단을 제공하면서 청나라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WHO 있어도 109년 전만 못해”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인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인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 대응에서는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협력 없이 자국의 방역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신종 코로나 방지를 위해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여행 제한, 외출 금지, 마스크 착용, 위생 강화, 지정병원 등의 조치는 110년 전 중국 북동부 지역에서 시행된 조치들을 모방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CNN은 "오늘날 미국, 중국, 유럽연합, 일본 등 주요국들은 보건 위기에 대한 협력적 대응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며 "그 어떤 비정치적 회의가 열릴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신종 코로나 대응에서 분열된 모습을 지적하며 "당시 선양에는 정치인들이 없었고, 오직 정부 간 대응의 필요성과 세계적인 보건기구가 필요하다고 본 과학자들만이 있었다"며 "국제사회가 정치색을 빼고 과학ㆍ보건 측면에서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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