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코로나 이후의 미술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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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스위스에서 자가 격리 기간이 거의 한 달에 이르는 동안 11살 아들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포트 나이트라는 게임의 세계에 푹 빠져서 살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꼭꼭 문이 닫힌 전 세계의 미술계가 고민하는 가장 중요한 논제는 바로 오프라인이 사라진 이 시기에 어떻게 온라인을 이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부터 청소년·어른까지도 가상의 세계로 깊숙이 끌어들이는 온라인 게임 산업뿐 아니라 패션이나 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여타 산업에 비하면 예술계의 온라인화는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다. 이는 ‘오리지널 작품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유니크한 체험이라는 예술이 주는 숭고의 영역을 감히 재생된 이미지쯤으로 대체할 수 있으리오!’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VR로 재현한 모딜리아니의 아틀리에. [사진 테이트 모던]

VR로 재현한 모딜리아니의 아틀리에. [사진 테이트 모던]

사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그리고 소수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제작 회사들이 몇 년 전부터 세계적인 미술관들과 협력하여 미술관 컬렉션을 온라인을 이용해 보다 효과적으로 많은 대중들이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왔다. 매우 진보된 VR 프로그램을 개발해왔지만 가상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온라인 미술 시장 등은 오프라인에서 실재하는 미술계를 보조하는 조연 역할을 하면서 아직 먼 미래를 준비하는 소극적인 단계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세계의 미술계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갑자기 울려진 총성에 온라인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힘차게 달리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미술 시장의 대표적인 이벤트인 아트 바젤이 취소된 후 진행된 온라인 뷰잉과 판매는 예상외의 성과를 이루면서 잠재력을 보여주었고,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온라인 뷰잉룸을 개발해온 글로벌 거물급 경매 회사들과 갤러리들이 벌이는 선두 주자의 질주를 중·소급 갤러리들이 따라가려 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로 인해 마주한 이 위기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불가피하게 앞당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온라인으로 성취되는 국경도, 인종도, 계급도 없는 미술계. 미술의 글로벌화와 민주화에 이어 가까운 미래에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간의 물리적인 존재 없이도 멋진 가상 미술관의 훌륭한 전시를 집에서 앉아서 감상하고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고도 전 세계의 아트 페어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는 작가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작품에 담긴 철학적 심사숙고의 과정을 작가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 예술 수요자가 최대한 쉬운 방법으로 테크놀로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유일무이한 개개인의 감동과 체험에 최대한 다가가는 것, 이 세 개의 난이도 높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개선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