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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온라인 역량 키운 中…비대면 박람회 장악 나서나

중앙일보

입력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제임스 길레이 ‘베이징 궁전에서의 외교사절단 접견’(1793년). [중앙포토]

제임스 길레이 ‘베이징 궁전에서의 외교사절단 접견’(1793년). [중앙포토]

유서 깊은 중국의 대외무역 창구다. 1757년 청나라 건륭제가 서양과의 교역 창구를 하나로 제한했는데 이곳이 광저우다. 1840년 영국이 청과의 무역에 불만을 품고 벌인 아편전쟁도 광저우에서 시작했다.

광저우의 외국인상관들(1790년경). [중앙포토]

광저우의 외국인상관들(1790년경). [중앙포토]

광저우의 대외무역 전통. 공산주의 신중국에서도 이어졌다. 캔톤페어(중국 수출입 상품 박람회)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무역 박람회다. 캔톤은 박람회 개최지인 광저우시가 속한 광둥 지역의 영어식 표기다. 세계 바이어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광저우에 모여 중국 상품을 보고 거래를 맺는다.

지난 1957년 제1회 캔톤페어 개최 당시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지난 1957년 제1회 캔톤페어 개최 당시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1957년부터 총 126회 열렸다. 개최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상품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소개 자리였다. 1회 박람회 거래액이 8686만 달러(약 1053억원)로 알려져 있다. 당시 중국 외환 보유액의 20% 규모다. 66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문혁) 때도 열렸다. 78년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 대외무역의 주요 창구로 기능 중이다. 지난해 봄 캔톤 페어에선 약 2000억 위안(약 35조 원)어치 중국 제품 수출 거래가 이뤄졌다.

1999년에 열린 85회 캔톤페어의 모습.[신화=연합뉴스]

1999년에 열린 85회 캔톤페어의 모습.[신화=연합뉴스]

문혁도 어쩌지 못한 캔톤페어. 코로나19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중국 신화통신과 증권시보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127회 캔톤 페어를 6월 중·하순쯤 온라인으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7일 리커창 총리가 주재한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다. 올해 캔톤 페어는 원래대로라면 4월 15일 개최돼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난달 무기한 연기됐었다.

문화대혁명 때도 열린 中 캔톤페어 #코로나에 63년만에 첫 온라인 개최 #전 세계 감염 상황 이어져 실현 의문

개최 불발은 막았지만, 온라인 전면 개최는 전례가 없다. 남방망(南方網)에 따르면 2003년부터 캔톤페어 일부 행사가 온라인으로 열리긴 했지만, 박람회 전체를 온라인으로 연 적은 없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중국 수출업체를 살리려는 고육지책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중국 국무원 상무회의는 지난달부터 대외무역 활성화를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중국기업 정보플랫폼 톈옌차(天眼查)에 따르면 중국에서 1~3월 폐업한 기업이 46만 개가 넘는데, 이 중 2만 6000여 곳이 수출업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수출은 올해 초보다 14%나 감소했다. 수출은 중국 경제의 여전히 큰 기둥이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한다. 정부로선 글로벌 수요가 위축돼 어려운 수출업체들이 캔톤 페어를 통해서라도 돌파구를 찾도록 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4월에 열린 125회 캔톤페어에서 중국 수출업체 관계자(왼쪽)이 한 바이어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해 4월에 열린 125회 캔톤페어에서 중국 수출업체 관계자(왼쪽)이 한 바이어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전망은 불투명하다. 온라인 박람회에선 바이어들이 화면으로만 상품을 보고 수출업체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원활한 거래를 위해 캔톤페어 측이 온라인 설명회, 온라인 협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는 했다. 그래도 직접 물건을 살펴볼 수 있는 박람회의 이점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그렇다.

중국은 그래도 온라인 박람회를 '가야 할 길'로 생각하는 듯하다. 코로나19는 전 세계 박람회를 멈추게 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각각 3월과 4월에 열릴 예정이던 제네바 모터쇼와 제네바 시계박람회가 모두 취소됐다.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 박람회와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6월과 7월로 연기됐지만, 예정대로 개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난 2018년 4월 열린 캔톤페어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8년 4월 열린 캔톤페어 모습.[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박람회는 바이어에게 수출 상품을 홍보할 좋은 기회다. 중국 등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언제까지 박람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은 '온라인 캔톤페어'로 코로나19 이후 박람회의 새 모델을 제시할 생각이다. 중국 매체인 전상보(电商报)는 “코로나19로 2~4월 전 세계 수천 개의 박람회가 취소됐다”며 “만일 중국이 온라인 캔톤페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면 전시 시장에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1년 4월 열린 캔톤페어 당시 모습.[블룸버그=연합뉴스]

지난 2011년 4월 열린 캔톤페어 당시 모습.[블룸버그=연합뉴스]

국무원 상무회의가 7일 온라인 캔톤페어를 바탕으로 온라인 교역이란 신업태(新業態·신사업)를 키우겠다고 밝힌 것에서 이 같은 야망을 엿볼 수 있다. 온라인 상거래를 경제위기 극복의 첨병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기업도 움직였다. 경제 전문 매체 21세기경제보도는 “많은 기업이 6월 캔톤페어에 대비해 라이브 방송 등으로 회사·브랜드 소개, 무역 거래 추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라이브 방송 모습.[사진 타오바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라이브 방송 모습.[사진 타오바오]

중국은 자신감도 있다. 코로나19를 가장 먼저 겪으며 역설적으로 온라인 역량(?)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봉쇄령’으로 1~3월 동안 온라인을 이용한 '언택트(Untact)' 소비문화가 정착했다. 라이브커머스가 대표적이다. 라이브커머스는 모바일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걸 말한다.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라이브커머스 ‘타오바오라이브’는 2월 한 달간 신규 판매자 수가 전달보다 719% 증가했다. 한국에서 이제 시작한 온라인 재택 수업은 중국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126회 캔톤페어의 모습.[신화=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열린 126회 캔톤페어의 모습.[신화=연합뉴스]

온라인 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정책도 나왔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국제 전자상거래 시범구를 기존의 59곳에서 105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곳에선 통관절차가 간소화되고, 기업 소득세 등의 감면 혜택을 받는다. 수출업체들이 전자상거래를 통해 국제 통로를 뚫게 하기 위한 조치다. 국제전자상거래 시범구는 2015년 3월 항저우에서 처음 생겼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톈진, 상하이, 충칭, 허페이, 정저우 등에 설치됐다. 바이밍 상무부 국제시장연구소 부소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이 국제 전자상거래 플랫폼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이번 조치는) 무역업체들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관건은 코로나 팬데믹이다.

지난달 7일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달 7일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의 온라인 시장 장악 목표는 갈 길이 멀다. 온라인 거래를 주창해도 주변이 동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전 세계는 아직 코로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장성에서 노트북과 태블릿PC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린다 천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지금 상황에서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캔톤페어 개최가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이라며 “계약을 성사시킨다고 한들 언제라도 쉽게 취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랩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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