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칭찬해야 도와준다”…中 '마스크 외교'에 유럽 걱정

중앙일보

입력 2020.03.31 05:00

업데이트 2020.03.31 15:38

중국은 도움이 필요한 국가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6일 베이징에서 G20 화상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6일 베이징에서 G20 화상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26일 코로나19 공동 대응을 위해 소집된 G20(주요 20개국) 특별 화상 정상 회의에서 한 말이다. 시 주석은 이날 “코로나19는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공동의 적과 싸우고 있다”며 “중국은 모범사례 공유, 공동 백신·치료제 개발, 도움이 필요한 국가 지원 등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힘든 국가를 중국이 돕겠다고 세계 정상 앞에서 천명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미 버지니아주 노포크의 미 해군 병원선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미 버지니아주 노포크의 미 해군 병원선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 주석과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G20 화상회의를 언급했다. 그는 “대단한 일치가 있었고 아주 멋진 회의였다. 20개국 모두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엄청난 정신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며 “미국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 세계 파트너 및 친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처럼 ‘다른 국가를 지원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말은 없었다.

中, 코로나 위기를 패권 역전 기회로

지난 16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중국 적십자 의료팀이 시민들에게 마스크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 16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중국 적십자 의료팀이 시민들에게 마스크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중국의 기대가 아니다. 미국 내에서 불거지는 우려 섞인 전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이 예전에 보여온 전통적 리더십이 사라지고 있다. 이 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G20 화상회의가 끝난 직후인 27일 미 워싱턴포스트(WP)가 쓴 기사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위기의 시기를 이끌어왔다. 지금은 자기 고립을 실행 중”이란 제목이다. WP는 “미국의 라이벌들이 코로나바이러스 피해가 심한 다른 나라에 지원의 제스처를 보인다”며 “이때 미국은 국내 바이러스 봉쇄에 매달린 채 코로나19로 촉발된 지정학적 주도권 다툼에서 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WP 분석은 이렇다.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코로나19 위기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 있는 나라인 미국이다. 정작 미국은 다른 나라는 안중에도 없는 ‘자기 고립’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26일 G20 화상회의에서도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의 G20 화상회의 발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날 G20 정상들은 이날 5조 달러(약 6000조 원)의 기금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백신 개발 등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다. WP는 “하지만 정작 미국은 어느 정도 규모를 기여할지에 대해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5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공항에서 중국 의료지원단 단원이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탑승 직전에 손을 흔들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 25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공항에서 중국 의료지원단 단원이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탑승 직전에 손을 흔들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이런 사이 중국이 움직였다. 자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자 마스크 등 의료장비를 전방위적으로 원조해 주고 있다. 나라도 가리지 않는다. 뤄자오후이(羅照輝)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지난 26일 “현재까지 83개국에 진단키트와 마스크 등 의료장비를 지원했고 세계보건기구(WHO)에 2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며 “중국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가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며 이들을 기꺼이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심지어 미국도 포함돼 있다. 이탈리아 이란, 이라크, 세르비아 등 7개국에는 의료 인력까지 파견했다. 중국의 ‘코로나 원조’를 받지 않은 나라를 꼽는 게 쉬울 정도다.

코로나에 휘청한 미국 "내 앞가림도 바빠"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원조(Aid·援助)’의 원조(元祖)는 사실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가 굳어지자 미국은 동맹국들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원조를 해왔다.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전 세계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원조는 힘을 발휘했다. 라지브 샤 전 미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의 분석이다. USAID는 미국의 해외 원조 담당 기관이다. 샤 전 처장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당시 자원과 전문지식, 기술 능력 등에서 국제 공조를 이끌며 세계 위상을 굳혔다”며 “현재 모습은 그때와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26일 미국 미시간주 펀데일시의 한 자동차 판매점이 가게 유리에 코로나19로 주지사가 영업정지 명령을 내려 가게를 열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여놨다.[AFP=연합뉴스]

지난 26일 미국 미시간주 펀데일시의 한 자동차 판매점이 가게 유리에 코로나19로 주지사가 영업정지 명령을 내려 가게를 열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여놨다.[AFP=연합뉴스]

미 N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후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에 최근 미국 내 코로나19확산이 겹치며 국제적 (리더십) 공백 상태가 만들어졌다”며 “이 틈을 중국이 메우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은 자국 혼란을 수습하기에 급급하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 초기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미국은 큰 문제가 없다고만 했다”며 “이로 인해 미 당국자들은 코로나 대응에서 균열 양상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 미스가 일을 키웠다는 것이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9일 기준 13만명을 넘어 독보적 1위다. 토피크 라힘 뉴아메리카기구 연구원은 “현재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앙이 돼 버렸다”고 평가한다.

중국, 코로나 외교로 "우리가 미국 대안" 혈안

29일 미국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AFP=연합뉴스]

29일 미국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AFP=연합뉴스]

이는 ‘과학과 기술 분야의 세계 리더’라는 미국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 다른 나라를 이끌기는커녕 내부 단속도 못 하면서 중국 등 라이벌 국가에 조롱의 빌미를 줬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방위안보연구소(RUSI)의 엘리자베스 브로 선임 연구원은 “국제적 위기 때마다 미국이 조타수 역할을 해 다른 나라가 리더십에 의지했지만 지금은 어떠한 나라도 미국에 기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28일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 중국 산동성 의료지원단이 의료 지원품을 들고 내리고 있다. [신화망 캡처]

28일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 중국 산동성 의료지원단이 의료 지원품을 들고 내리고 있다. [신화망 캡처]

중국의 ‘코로나 원조’ 바람은 지능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라이벌’의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한 뒤 나서고 있는 셈이다.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의 엘리 라트너 연구원은 “지난 2008년 중국 지도자들은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체감했는데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같은 걸 느끼고 있다”며 “글로벌 주도권을 잡기 위해 프로파간다(선전선동)을 급격히 늘리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존 브레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자신들이 미국의 대안이라는 점을 알릴 기회라 본다”고 평가했다.

"中 정부·체제 칭찬해야 지원받아" 

지난 20일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의 한 물품창고 앞에서 응급단체 직원이 중국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탈리아와 중국의 깃발을 함께 달고 있다. 이곳에는 중국이 보내준 코로나19 관련 방역 물품이 보관돼 있다.[EPA=연합뉴스] [출처: 중앙일보] 코로나 수습 정신없는 트럼프···이틈에 '야망' 드러낸 시진핑

지난 20일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의 한 물품창고 앞에서 응급단체 직원이 중국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탈리아와 중국의 깃발을 함께 달고 있다. 이곳에는 중국이 보내준 코로나19 관련 방역 물품이 보관돼 있다.[EPA=연합뉴스] [출처: 중앙일보] 코로나 수습 정신없는 트럼프···이틈에 '야망' 드러낸 시진핑

승패는 아직 나지 않았다. 미·중 주도권 싸움은 아직 알 수 없다. 중국의 마스크 외교는 의심받고 있다. 유럽은 중국을 께름칙하게 여긴다. 마스크 1장, 진단키트 1개가 절실한 와중에 지원이 고맙긴 하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의도가 있다는 우려를 지우지 못한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3일 “중국이 의료 물자를 베푸는 ‘관용의 정치학’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투쟁을 벌이고 있음을 유럽 각국이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의 마르친 프리지호드니아크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그는 “중부나 동부 유럽 국가가 중국의 의료 물자를 받기 위해선 조건이 붙는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와 직접 접촉해야 하고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지원을 받는) 유럽 국가는 ‘현명한 지도자와 성공적인 정치 체제’로 중국이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중국식 화법을 구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1 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가운데)이 중국에서 온 의료 전문가 그룹을 환영하는 행사를 열고 환영사를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 21 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가운데)이 중국에서 온 의료 전문가 그룹을 환영하는 행사를 열고 환영사를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중국이 유럽 분열을 노린다는 우려도 있다. 코로나 원조 중 시진핑 주석은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등 서방 각국 지도자와 전화 통화를 가졌다. 하지만 유럽연합(EU) 수장인 폰 데어 라이언 집행위원장과의 통화는 리커창 총리에게 넘겼다. 중국이 유럽 각국을 ‘개별 격파’하는 전략을 쓴다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산 의료물품에 대한 불신도 있다. 28일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에서 수입한 마스크 60만 개를 리콜 조치했다. 품질 기준을 만족하게 하지 못한 탓이다. 리콜 대상이 된 마스크는 얼굴에 제대로 밀착이 되지 않거나 필터가 불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에서도 중국 ‘선전 바이오이지 바이오테크놀러지’사에서 수입한 코로나19 진단키트 정확도가 30%에도 못 미쳐 업체에 제품 교체를 요청한 바 있다.

백신 개발이 미·중 경쟁의 최종전일 수 있다.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카이저 퍼머넨테 보건연구소에서 진행된 코로나19 백신 접종 실험에서 연구원이 접종 참여 여성 제니퍼 할러(왼쪽)에게 백신을 투여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카이저 퍼머넨테 보건연구소에서 진행된 코로나19 백신 접종 실험에서 연구원이 접종 참여 여성 제니퍼 할러(왼쪽)에게 백신을 투여하고 있다.[AP=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은 잦아들었다지만, 중국은 '경제 코로나 리스크'에 떤다. 중국 집권층은 ‘경제 성장’에 항상 목마르고, 그러므로 수출은 여전히 중요하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위력은 글로벌 시장이 활발해야 발휘된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은 “코로나19는 중국이 경기 침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며 “중국은 세계 경제 없인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세계 혼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은 방어 수단일 뿐이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만이 세계 경제 회복의 최종 답안이다. 미 NBC가 “궁극적으로 미·중의 경쟁은 두 나라 중 하나가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지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유다. 누가 뭐래도 세계 의약계의 강자이자 표준은 미 식품의약국(FDA)이 있는 미국이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개발을 “의료 전쟁(medical war)”이라 표현하며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기득권을 이겨낼 수 있을까.

차이나랩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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