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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에게 새 생명 주고 떠난 9살 ‘휘파람 소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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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갑작스런 뇌출혈로 뇌사 판정을 받아 지난 6일 7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고홍준 군의 생전 모습.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갑작스런 뇌출혈로 뇌사 판정을 받아 지난 6일 7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고홍준 군의 생전 모습.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네가 오는 거라 생각할게.”

고홍준 군 급성뇌출혈로 쓰러져 #뇌사판정 받은 뒤 장기기증

휘파람을 부르며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나누길 좋아하던 9살 제주도 소년이 7명에게 새 삶을 주고 떠났다.

7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따르면 지난 6일 고홍준 군이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심장과 간장·신장 등 장기를 기증하고 생을 마감했다. 고 군은 지난 1일 집에서 저녁을 먹다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지난 5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해 친구들이 보고 싶다던 고 군은 병원에서 짧은 삶을 마쳤다.

고 군은 흥이 많았다고 한다. 휘파람을 불기를 좋아해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면 고 군이 오는 줄 알 정도였고, 제주 화북초등학교 관악부와 윈드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을 연주했다. 축구를 좋아하고, 과자든 게임기든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가족들은 언제나 휘파람 부르며 웃음 짓던 막내(3형제 중)를 떠나보내는 건 고통스럽지만, 다른 생명을 살린다면 고 군도 좋아했을 거라 생각하며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고 군의 어머니는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는 앞으로도 홍준이를 사랑할 거고 평생 기억하고 있을게.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면 네가 오는 거라 믿으며 살아갈게. 사랑하고 고마워”라고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고 군 가족은 “장기기증이 처음에는 두려웠는데, 병원 의료진과 KODA 코디네이터가 부모의 마음으로 홍준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모습에 감동했다”며 “홍준이를 위해 함께 해준 많은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원현 KODA 원장은 “어린 홍준이가 쏘아 올린 생명의 불씨는 7명의 생명을 살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며 “유가족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천사 홍준 군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제주=최충일·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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