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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김정일 가게무샤로 평생 빙의훈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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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모의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역을 했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7일 오전 숨졌다. [중앙포토]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모의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역을 했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7일 오전 숨졌다. [중앙포토]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회담 준비 차원에서 진행했던 모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역(影武者·가게무샤, 그림자 무사)’을 맡았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7일 별세했다. 90세.

김달술 전 통일부 연구위원 #북한 지도자 일거수일투족 분석 #“몸은 한국, 생각·행동은 북한 사람” #2000년 정상회담 앞두고 모의연습 #“김정은 만만하게 볼 사람 아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1961년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북한 체제를 연구했고 첫 남북 당국 간 공식 대화인 적십자회담(71년)의 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특히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의 최고지도자 연구에 매진하면서 ‘몸은 한국에 있지만, 생각과 행동은 북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7년 은퇴 때까지 ‘북한 사람’으로 생활해 온 것이다.

1971년 타워호텔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김달술 남측 대표(왼쪽)와 한시혁 북측 대표가 합의문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는 모습. [중앙포토]

1971년 타워호텔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김달술 남측 대표(왼쪽)와 한시혁 북측 대표가 합의문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는 모습. [중앙포토]

고인은 생전 “공직에 있을 땐 아침에 눈을 뜨면 노동신문 일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며 “끊임없이 북한 지도자 빙의(憑依) 훈련을 해 왔다”고 말했다. 북한 신문이나 영상에서 북한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따라 하는 게 ‘일’이었던 셈이다.

북한의 대화 제의 의도를 분석하고,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가게무샤’로, 남북정상회담 때 돌발상황을 사전 연출하곤 했다.

은퇴 이후 양재동의 기원에 다녔는데, 바둑판에서 북한의 의도를 꿰뚫으려는 노력도 했다고 한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곤 “김정일 위원장이 북방 삼각관계(북·중·러)를 탈피해 한국·미국과 경협을 시도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2018년 본지와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기 카리스마를 세우려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다”며 “만만하게 볼 사람은 아니다. 처음엔 막무가내가 아닌가 싶었는데, 상당히 주도면밀한 인물이다. 본능적인 게 있다고 봐야 한다”는 평가를 남겼다.

유족은 부인 박영순씨와 김훈(강원대 교수)·엽·국경씨 등 2남 1녀.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지만, 유족들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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