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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느슨해진 위기의식, 더 큰 위험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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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전 세계 코로나19 환자 수가 12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6만4000여 명이 사망했다. 미국에서만 3일 만에 10만 명의 확진자가 추가됐다. 국내에서도 매일 100명 안팎이 양성 판정을 받으며 전체 확진자는 1만237명(5일 기준)이 됐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란 이야기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금까지 방파제를 쌓아 파도를 막았지만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쓰나미가 예상된다. 감염 폭발에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헌신과 시민들의 성숙한 대응으로 전파 속도를 늦추고 있지만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맞다.

세계 환자 120만, 국내선 꽃구경 인파 몰려 #방파제 역할 했던 성숙한 시민의식에 균열

하지만 방파제 역할을 했던 성숙한 시민의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에선 벚꽃축제가 열리던 국회 주변을 폐쇄했음에도 여의나루역 일대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3월 마지막 주 서울 11개 한강공원 이용자(143만 명)는 지난해(111만 명)보다 훨씬 늘었다. 삼척시는 축제를 취소했는데도 상춘객들이 몰리자 축구장 8배 넓이의 유채꽃 밭을 갈아엎기도 했다.

자가격리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3일 확진받은 경기도 군포의 50대 부부는 격리 지침을 어기고 미술관·식당·주유소 등을 돌아다녔다. 코로나19 증상에도 다량의 해열제를 먹고 입국한 미국 유학생은 기내에서만 20여 명의 접촉자를 냈다. 감염 우려 상태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큰 잘못이란 걸 잊은 듯하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응도 문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지난달 31일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후에야 공연을 중단했다. 이미 8578명의 관객이 다녀간 뒤였다. 교회 예배는 대통령까지 나서 강력 중단을 요청하는데, 더 오랜 시간 관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일부 공연은 최근까지도 성행하고 있다.

연인과 공연을 즐기고 가족과 꽃구경한 게 무슨 큰 잘못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에서 조용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온 다수의 사람이 꽃을 싫어해서 가만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조금 더 참아야만 사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꽃은커녕 햇빛도 보기 어려운 의료진의 헌신과 노고를 생각한다면 꽃구경쯤은 잠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제 정부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19일까지 2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마스크 대책 등 오락가락 행정으로 실책을 범한 부분도 있지만, 지금은 시민 각자가 거리두기 정책엔 힘을 실어 주고 능동적으로 협조할 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겐 조그만 불편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가 달린 큰 고통이다. 현 상황의 종료가 늦어지고 장기화할수록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취약계층부터 타격을 입는다. 지금 우리는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회적 공감 능력 ‘측은지심(惻隱之心)’이 필요한 고빗길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