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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반대, 기록해달라"···당정 갈등이 졸속 재난지원금 낳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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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쉽지 않은 결정이어서 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쳤다(문재인 대통령).”
“굉장히 격렬해 싸우기 직전까지 갈 수 있었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

정부가 30일 소득 하위 70% 가구에 주겠다고 발표한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당ㆍ정ㆍ청 사이 견해차가 컸다는 점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소득 하위 70% 기준점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해 혼선을 빚은 것도 이 갈등에서 비롯했다. 4ㆍ15 총선을 앞두고 지원 대상으로 누굴 넣고, 누굴 빼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서다.

정부가 주는 재난지원금은 사상 처음인 만큼 발표까지 난산(難産)을 겪었다. 문 대통령은 “가장 힘든 사람에게 먼저 힘이 돼야 한다(17일)”→“조속한 시일 내에 실효성 있는 취약계층 지원 방안이 논의되도록 준비해달라(19일)”→“생계지원방안에 대해 재정 소요를 종합 고려해 신속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해 달라”며 재난지원금 지급의 불씨를 댕겼다.

민주당은 전 국민의 최대 70∼80%에게 1인당 50만원씩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전체 국민의 50%에게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나라 곳간을 다루는 기획재정부는 중위 소득 이하 1000만 가구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위 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를 뜻한다.

당정은 발표를 하루 앞둔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부딪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발 물러선 기재부 최종안으로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되 50% 이하는 100만원, 50∼70% 구간은 50만원으로 차등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 윤호중 사무총장 등 여당은 “똑같이 줘야 한다”며 반대했다. 결국 홍 부총리가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며 뜻을 꺾어야 했다.

소득 기준선을 낮춰 지급 대상은 최대한 늘리고, 같은 액수를 주도록 한 현재 안을 낳은 변수는 총선이었다. 여당이 가능한 수혜자를 늘리면서 ‘누구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는다’는 식의 형평성 논란을 피하는 최대한 안전한 길을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위 소득 이하를 기준으로 하면 취약계층은 포함하지만 통상 말하는 중산층은 대부분 빠진다”며 “여당이 주 지지층인 30~40대 맞벌이 부부, 대졸자 등 중산층을 의식했다”고 지적했다.

1400만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 최대 100만원 지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400만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 최대 100만원 지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발표 직전까지 합의에 난산을 겪은 덕에 결국 지원 기준점을 정하는 데 차질을 빚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30일에야 지급 대상자 선정 기준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받아 작업에 들어갔다”며 “소득만 볼지 재산도 같이 볼지 아직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단순 소득 기준으로 지원할 수 없고, 재산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점도 기준을 못 정한 이유다. 소득을 산정할 때 급여나 사업 소득뿐 아니라 재산가액을 소득으로 환산한 ‘인정 소득’까지 더해야 하므로 소득이 적더라도 집이나 자동차 등 재산이 많다면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건강보험료도 소득ㆍ재산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어느 시점 소득을 기준으로 정할 것이냐 문제도 남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나 사회보장 제도에서 소득은 재산ㆍ소득을 모두 고려한 소득 인정 개념을 포괄적으로 사용한다”며 “재산ㆍ소득을 합쳤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인 분들이 받을 수 있도록 형평에 맞게 기준을 설정하고 대상자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점에 따라 몇원 차이로 아예 못 받거나 최대 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만큼 경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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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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