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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물서 뛰던 용의 귀환…“강철몸·수퍼슛 보여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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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호 26면

[스포츠 오디세이] 울산 ‘블루 드래곤’ 이청용

‘블루 드래곤’이 돌아왔다. 청룡(靑龍)이 하늘을 날아와 내려앉은 곳은 동해안 공업도시 울산이다. 11년의 유럽 생활을 청산한 이청용(32)이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유럽 진출 11년 만에 K리그 복귀 #“나를 가장 원한 울산서 우승 도전” #원래 등번호 27번 대신 72번 달아 #“후배 번호 뺏는 건 상도덕 아니죠” #잘 다쳐 ‘유리몸’ 슈팅 약해 ‘소녀슛’ #“큰 신경 안 쓰지만 보완하려 노력”

이청용은 국가대표 A매치 89경기에 출장한 베테랑 미드필더다. 화려한 드리블로 공격의 활로를 뚫고 날카로운 패스로 골에 기여한다. 서울 도봉중을 중퇴하고 2004년 FC 서울에 입단한 이청용은 2007년 단짝인 기성용(31·레알 마요르카)과 함께 ‘쌍용’ 시대를 열었다.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으로 이적한 이청용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2골을 터뜨리며 한국 축구의 ‘첫 원정 월드컵 16강’에 기여했다.

2011년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한 이청용은 힘겨운 재활을 이겨냈고 크리스털 팰리스-VfL 보훔(독일)을 거치며 꾸준히 활약했다. 이청용은 친정인 FC 서울 복귀가 유력했으나 기성용과 서울의 복귀 협상이 결렬되는 과정을 보면서 울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MVP 후보 1위? 부담되지만 감사

11년만에 국내로 돌아와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은 이청용. 송봉근 기자

11년만에 국내로 돌아와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은 이청용. 송봉근 기자

이청용은 ‘미리 보는 2020 K리그1 MVP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 15년째 리그 우승이 없는 울산도 이청용을 앞세워 정상에 재도전한다. 울산은 지난해 ‘비겨도 우승하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포항에 덜미를 잡혀 전북 현대에 우승을 내줬다.

코로나19 여파로 K리그 개막이 미뤄지는 가운데 울산에서 이청용을 만났다.

왜 하필 울산이었나요.
“간단해요. 저를 제일 많이 원했고 진심이 와 닿았기 때문이죠. 한국 복귀 자체가 저한테는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한국은 늘 그리운 곳이었지만 돌아가서 뛴다면 전성기 나이가 아닌데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부담이 컸어요.”
팀에서 원하는 역할은 뭔가요.
“최선의 경기력으로 작년(2위)보다 좋은 성적을 얻도록 해야죠. 모든 면에 솔선수범하고 팀이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작년 최종전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선수들이 당시 얘기를 하면서 굉장히 괴로워하고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니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야죠.”

팬이 원하는 프로 시스템 갖춰야

27번이 아닌 72번을 달았는데요.
“아무리 대단한 선수가 와도, 제가 그렇게 대단한 선수도 아니지만, 후배(장재원·22) 번호를 뺏어서 다는 건 상도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웃음). 72번은 베테랑에겐 너무 무거운 번호라고들 하지만,  새 번호를 받아 열심히 하면 제게는 또 다른 스토리의 번호가 생기는 거잖아요.”
MVP 후보 1위에 올랐는데요.
“제 경기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재미로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만큼 저한테 기대가 크다는 뜻이겠죠. 제겐 하나도 도움 안 되고 오히려 부담되는 상황입니다(웃음). 그럼에도 1등으로 올려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뛰겠습니다.”
부상이 잦다고 해서 ‘유리몸’, 슈팅이 약하다고 ‘소녀슛’ 소리도 들었죠.
“제 주변에서 맴도는 말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점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다만 제가 좀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니까 부상당하지 않기 위해, 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어요. 그래서 유리몸이 강철몸이 되고, 소녀슛이 슈퍼슛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축구인생 끝날 때까지 노력해야죠.”
2007년 FC 서울에서 뛸 당시의 이청용. [중앙포토]

2007년 FC 서울에서 뛸 당시의 이청용. [중앙포토]

‘쌍용’을 못 보는 아쉬움이 큽니다.
“저와 성용이도 굉장히 아쉬워했어요. 안타깝고 슬펐지만 다 지난 일입니다. 팬들에겐 고마운 마음뿐이죠. 성용이와 통화하면서 ‘진짜 우리는 팬들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가만 있는데 오히려 더 안타까워하고 걱정해 주시잖아’라고 했어요.”
K리그가 더 성장하려면?
“투자든, 경기력이든 좀 더 인정받는 수준이 돼야겠죠. 클럽이 선수를 대하는 태도나 계약 등에서 개선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프로축구연맹도 팬들이 원하는 시스템을 찾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즌 막판 상하위 스플릿(1∼6위, 7∼12위로 나눠 리그 운영)이 정말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식일까요. 진짜로 이유를 알고 싶어서 프로연맹 높은 분에게 여쭤봤더니 자신 있게 설명을 못 하더라고요.”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나요.
“몇 번 겪어봤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어요. 인종차별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합니다. 저는 그들을 안타깝게 봅니다. 교육을 못 받고,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 열등감을 표출하는 거니까 당하는 저보다 그들이 더 불쌍한 거죠. 그래서 교육, 특히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가정은 어땠나요.
“특별히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다기보다는 화목하고 서로 배려하는 가정에서 자랐어요. 못된 아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뭔가 사고를 치는 아이들은 가정에 분명히 아픔이 있더라고요. 저도 아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려 하고, 남을 위해 희생은 못하더라도 피해 주지 않고 배려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축구가 없는 일상’을 통과하면서 가슴에 새겨야 할 게 뭔지 물었다. “각자의 책임감이죠. 저한테는 축구가 전부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공놀이일 뿐이잖아요. 사람들이 공놀이를 보면서 즐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든 이기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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