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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사의 일기]“이젠 방호복이 패션, 짓눌린 얼굴도 헝클어진 머리도 자랑스러워”

중앙일보

입력

3월 18일
일주일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2주간 교대로 파견해서 오는 봉사자들은 각자의 근무처로 돌아가고 새로운 파견자들이 투입됐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의 민간 지원자들은 4주간 봉사를 하는 터라 다음 주 25일까지 봉사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김미래(60) 칠곡 경북대병원 간호사

며칠 전 입원할 때부터 고열과 답답함을 호소하던 72세 할머님은 폐렴 증상이 진행돼 대학병원으로 전원 가게 됐다. 앰뷸런스를 타는 순간 빤히 쳐다보시며 “친절하게 해 줬는데…. 다른 곳에 가면 어쩌나. 애만 먹이고 간다”고 한다. 걱정 가득한 모습이다.

“그 병원 가셔도 모든 간호사가 잘 해 드릴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나으셔서 아드님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셔야지요.”

퇴원해 가신다면 마음이 홀가분할 텐데…. 무서울 만큼 전신에 하얀 보호구를 두른 사람들이 할머님을 배웅한다. 마중하는 가운데 할머니 마음은 어떨까. 남들이 기피하는 전염병을 안고 미안함과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앰뷸런스에 올랐다.

대구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 도착한 응원 메시지. [사진 김미래 간호사]

대구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 도착한 응원 메시지. [사진 김미래 간호사]

새로운 환자 두 명이 들어왔다. 병실이 없어 자가 격리하던 중 고열과 전신통, 호흡곤란이 동반돼 불안한 날들을 보내오다 입원하게 됐다며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다인실에서도 각자의 제한된 공간 안에 활동해야 하는 코호트 격리 생활은 매우 힘들고 답답한 일상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입원하게 되면 병원이라는 곳이 본인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병실생활을 시작한다.

정말 정신없이 앞도 안 보일 만큼 마구 쏟아지는 소낙비도 멈추고 입원한 환자들은 2주가 되니 음성 판정을 받고 다수가 퇴원하게 됐다.

일상으로 돌아가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 시간의 교훈을 미리 생각해 본다. 두려움과 암흑 같은 지난 시간, 어떤 어려움과 부족함이 있어도 덮어주고 이해하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암묵적인 규칙을 유지했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각자의 소임을 다했던 의료인들이 있다. 국민과 대구시민들은 지금도 코로나19 전시 속에서 각자가 힘든 시간이지만 의료인을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컨테이너 생활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침과 밤이 되면 허허벌판에 착의와 탈의하는 곳을 오가며 추위와 싸운다. 숙소가 모자라 모텔 같은 곳을 내 집 삼아 지내는 간호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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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구병원 재활치료 선생님들은 병원 입구 통제를 위해 밤낮없이 방한복에 의지한 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힘든 상황을 의지하듯 누구인지 몰라도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보듬어 주고 있다.

대구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자원봉사 중인 김미래 간호사가 18일 밤 근무를 끝내고 19일 오전 방호복을 탈의하고 있다. [사진 김미래 간호사]

대구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자원봉사 중인 김미래 간호사가 18일 밤 근무를 끝내고 19일 오전 방호복을 탈의하고 있다. [사진 김미래 간호사]

평상시 정돈된 모습이 아니면 타인 앞에 나서지도 않던 나는 이제 얼굴이 짓눌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해도 그저 이 모습이 자랑스럽다. 방호복이 바뀌고 장갑 색이 바꾸면 그것이 새로운 패션인 양 스타일을 이야기한다. 밤사이 답답했던 방호복을 벗어놓고 오늘도 자기 암시를 하며 소임을 다하자고 다짐해 본다. 먼동이 트는 아침 햇살이 등 뒤를 내리쬐고 있다.

정리=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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