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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사의 일기]“몇달 전 돌아가신 내 할머니…내 앞 이 할머니 꼭 사셨으면”

중앙일보

입력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 지원을 간 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박지원(27) 간호사가 방호복 열기를 식히기 위해 냉장고에 기대고 있다. [박지원 간호사(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제공]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 지원을 간 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박지원(27) 간호사가 방호복 열기를 식히기 위해 냉장고에 기대고 있다. [박지원 간호사(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제공]

[박지원 칠곡 경북대병원 간호사 8-아홉 번째 근무를 마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퍼지면서 지역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여기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의료진들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모두가 두려워할 때 손들고 나선 이들 중에는 만 4년차인 박지원(27) 간호사도 있다. 그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현장을 직접 뛰며 배워보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내비쳤다. 박 간호사의 눈으로 본 코로나19 현장의 모습을 연재한다.

아홉 번째 근무를 마치고

어제 하루 휴일을 갖고 오늘도 중환자실에 배정됐다. 지난번 중환자실 근무가 힘들었던 탓에 걱정을 많이 하고 갔다. 다행히 환자 대부분이 안정적인 상태여서 크게 바쁘지 않았다. 함께 근무한 다른 병원 선임 간호사들은 내가 몰랐던 기계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이전 타임 근무 선생님은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환자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지 한명 한명 점검하고 주변을 정리하느라 2시간이나 더 근무했다. 이런 선생님들 덕분에 환자가 더 좋은 간호 환경을 제공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이틀 전에는 컨디션이 좋지 못해 산소마스크를 했던 환자분이 오늘은 비강 캐뉼러로 산소를 많이 낮춘 채 편안한 모습으로 침상에 앉아서 편지와 사진을 보고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던 터라 환자에게 다가가서 이게 뭐냐고 여쭤봤다. 아들·딸·손녀·사위가 보내온 손편지와 가족사진이었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 지원을 간 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박지원(27) 간호사. [사진 박지원]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 지원을 간 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박지원(27) 간호사. [사진 박지원]

"옛날 기억을 잊지 말라고 애들이 편지랑 사진을 보내줬다"고 하시며 편지를 천천히 읽고 계셨다. '빨리 퇴원해서 놀러 다니자'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 '의사, 간호사 말 잘 들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편지 한장 한장에 꾹꾹 눌러 담았을 그 마음을 생각하니 뭉클했다. 일반 중환자실과 달리 면회도 하지 못하고 전화로만 연락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할머니가 많이 걱정됐을 것 같다. 옆에서 같이 편지를 읽다가 몇 달 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마스크와 고글을 쓰고 있어서 티가 안 나 다행이었다.

편지를 다 읽으시곤 사진을 넘기면서 자식들 이야기를 해주셨다. 며칠 전까지 대답도 잘 못 하고 힘들어하던 분이 이제는 편히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이야기를 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환자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환자분이랑 꼭 일주일 안에 일반 병실로 가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또 퇴원하면 간호사, 의사들을 찾아와 맛있는 걸 많이 사주신다고 하길래 꼭 찾아오시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씀드렸다. 찾아오지 않더라도 꼭 빨리 완치돼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내일은 더 많은 환자가 퇴원하고, 더 좋은 컨디션으로 계시길 바란다.

정리=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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