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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증시 무너진 날, 文지시에 마스크 챙기러 간 경제 수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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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파주, 용인. 마스크 생산‧제조 회사가 자리한 도시이자 지난 9일 경제팀 수장들이 달려간 곳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안성 케이엠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파주 아텍스를 방문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용인 상공양행을 찾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안성 마스크생산 업체인 케이엠을 방문, 생산현장을 시찰하며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기획재정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안성 마스크생산 업체인 케이엠을 방문, 생산현장을 시찰하며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기획재정부

같은 날 전 세계 증시는 ‘검은 월요일’ 충격에 휘청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다 유가 하락까지 겹친 탓이다. 한국도 피해 가지 못했다. 실물 경제의 바로미터 격인 주가가 무너진 날 경제 컨트롤타워와 산업 정책‧경쟁 당국 수장이 마스크 수급 대책에 목을 맨 풍경이 벌어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마스크가 '주특기'가 아닌 경제팀이 마스크 정책을 총괄하면서 마스크 대란은 잡지도 못하고, 정작 해야 할 ‘코로나19 쇼크’ 대응은 뒷전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스크 판매와 관리는 그간 사회경제장관회의 영역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담당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장·차관이 직접 현장을 챙기라”는 지시를 한 이후 기재부가 총대를 멨다. 다른 경제 부처도 마스크를 정책 우선순위에 뒀다. 마스크 5부제, 대리구매 개선 등의 대책 입안과 브리핑은 모두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주관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보건용 마스크 생산업체 아텍스를 방문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보건용 마스크 생산업체 아텍스를 방문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이 정점이었다. 부총리 포함 경제팀 3개 부처 장관이 이날 마스크 현장을 방문했다. 특히 홍 부총리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 참석, 기재부 확대간부회의 주재 후 경기도 안성 소재 마스크 생산업체에 달려갔다. 이날 대부분을 마스크 관련 일정에 할애한 것이다. 그러다 증시가 크게 주저앉자 다음날 부랴부랴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를 열고 공매도 제한 강화 등의 대책을 급히 내놨다.

전문성 없는 경제팀이 마스크 대책 도맡아 #품귀 현상도 못잡고 코로나 경제 대응도 못해

부총리뿐 아니라 기재부 직원들은 ‘본업’을 젖혀두고 현장 점검에 나서야 했다. 홍 부총리는 9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활성화 대책을 모두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직원들은 마스크 업무만으로도 과부하가 걸렸다.

이런 사이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파장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쇼핑‧관광 등에서 나타난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주가를 비롯해 고용, 수출로 퍼졌다. 지난달 일시 휴직자는 14만2000명 늘었다. 8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코로나19에 따른 휴업 여파로 일터가 있어도 일을 못 한 사람이 늘었다는 얘기다. 이달 1~10일 일평균 수출은 1년 전보다 2.5% 감소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수출마저 벼랑 끝으로 밀려가고 있는 셈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마스크제조업체 ㈜상공양행을 방문해 생산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마스크제조업체 ㈜상공양행을 방문해 생산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 시각도 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9일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1.4%로 예상했다. 2월에 2.1%에서 1.9%로 낮춘 데 이어 한 달 만에 0.5%포인트를 더 끌어내렸다. 익명을 원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경제부처 장·차관들이 마스크 업무에 하루를 다 쓸 때가 있다”며 “물론 마스크도 중요하지만, 당면 경제 과제나 앞으로 올 충격에 대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못하다”고 걱정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와대와 정치권이 정책을 주도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기재부를 비롯한 경제팀이 큰 방향의 정책 제시를 못 하고 급한 사안을 처리하는데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팀이 매달렸다고 마스크 문제를 풀어낸 것도 아니다. 공급 대비 수요가 두세 배 이상 많기 때문에 애초부터 수급으로 풀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었다. 오락가락한 정부의 마스크 사용 지침부터 바로 잡았어야 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제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 1차관이 마스크 브리핑에 잇따라 나선 모습은 정상적이지 못하다”며 “업무 효율 측면에서도 마스크 수급 대책은 그간 관련 업무를 해 온 보건복지부나 식약처가 일임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라도 기재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 콘트롤타워가 코로나19 쇼크에 대응토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예비비 집행,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긴급 자금 지원 등 속도를 높여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국회에서 추경안을 처리하는 대로 바로 집행될 수 있도록 채비도 갖춰야 한다. 벌써 ‘제2 코로나 추경’ 을 포함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팀 앞에 높인 숙제가 산더미라는 얘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청와대는 이제라도 경제팀이 코로나 19에 대한 경제 대응에 주력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대책은 물론이고, 방역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코로나19로 흔들린 경제를 어떻게 반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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