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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흥의 과학판도라상자

대관식 이후를 준비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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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1807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새로운 교향곡을 초연한다. 그가 작곡한 아홉 개의 교향곡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이 교향곡은 그 웅장함과 비장미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베토벤이 이 교향곡을 당시 프랑스 공화정을 이끌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헌정하려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당시 자유·평등·박애의 기치 아래 세워진 공화주의 정신을 배신하고 셀프 대관식을 통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은 인간의 권리를 짓밟고 야심을 채우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폭군이 됐다”고 비난하면서 제목을 ‘영웅’으로 바꿔버렸다.

마스크 대란은 사회관계 단절 재촉 #각자도생만으론 문제 해결 안 돼 #시민의식의 성찰과 모색 나설 때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우리 시민사회를 지탱하던 공동체 정신이 붕괴되고 있다.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이름은 왕관처럼 생긴 돌기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나 다른 대다수 생명체는 두 가닥의 DNA가 이중나선형 구조로 이루어진 핵산을 갖고 있다. 두 가닥의 핵산이 나선 형태로 꼬여 있어 안정적이고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매우 힘든 구조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한 가닥의 리보핵산 즉 RNA로 이루어져 있어서 변화무쌍하게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사스에서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까지 코로나바이러스는 항상 돌연변이를 일으켜 왔고 변신하면서 귀환했다.

바이러스의 엄청난 확산력 앞에 인간이 구축해온 두 가닥의 DNA 이중나선처럼 안정적이었던 공동체 정신은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바이러스는 대관식을 마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황제처럼 군림하려 한다. 초연결 사회의 연결망이 붕괴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것은 마스크를 구하는 것뿐이다. 마스크로 무장하고, 또다시 두어장의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을 서는 모습은 바이러스가 가져온 슬픈 풍경이면서 발전된 산업사회의 역설이다. 이런 일반인의 공황상태를 비집고 일부 불법 마스크 브로커들은 한 번에 큰돈을 벌기 위해 마스크를 매점매석하고 있다. 사회관계의 단절과 위축, 그리고 각자도생의 슬픈 현실은 감염병의 공포와 결합하면서 더욱 큰 공황상태를 재촉한다.

지금 사람들이 갖는 절망감은 감염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전환됐다. 과거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스크 쓰기에 집착했던 일본인의 행동습관에 대한 인류학 연구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연구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특별히 개인위생에 집착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배려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한신(阪神) 대지진과 사스와 같이 이어지는 재난 상황과 함께 1990년대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공공의료체계와 기존 공동체적 사회관계가 붕괴하면서 개인들이 자구책으로 사용하는 첫 번째 방어물이 바로 마스크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마스크 대란의 이면에 존재하는 심리상태도 일본의 불안과 공황상태와 다르지 않다. 마스크 착용은 결국 사회관계와의 단절이며 공동체 관계망의 붕괴를 의미한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 강력해진 바이러스의 귀환을 촉진하는 원인은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과 욕심이다. 맹목적 이윤추구는 사회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켰다. 고도의 방역과 의료체계의 구축에도 불구하고 간과되고 외면되었던 정신병동과 사회의 안전망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모이는 유사종교집단과 같은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은 도시화한 공간에서 인간과의 조우를 통해 성공적으로 감염력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코로나19는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코로나 20, 코로나 21이 몰려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각자도생의 노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재난은 항상 그 사회에 잠재된 문제와 취약점을 드러낸다. 당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료진의 눈물겨운 노력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새롭게 마련해야 할 시민의식의 성찰과 새로운 모색을 시작할 때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