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 대구시장, 문 대통령에 “긴급명령권 요구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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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1일 오후 대구시청 2층 상황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관련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대구시청 제공]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1일 오후 대구시청 2층 상황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관련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대구시청 제공]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요구한 데 대해 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무회의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문 대통령에게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3000병상을 구해달라고 말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대구에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권 시장, 세종청사에 있는 각 부처 장관, 그리고 15개 시도지사를 영상으로 연결하는 ‘4원 중계’ 형태로 진행됐다.

권 시장은 전날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경증 환자를 수용할) 생활치료센터로 활용이 가능한 공공연수원과 대기업 연수원 등을 확보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3000실 이상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강 대변인은 “(국무회의에서) 권 시장은 ‘법적 검토가 부족한 채로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말해서 죄송하다. 상황이 긴급해서 올린 말씀임을 양해해 주십사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긴급명령권은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에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때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리는 명령이다. 헌법 제76조에 그 권한이 명시돼 있다. 2항에는 발동 요건이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 상태에 있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때’라고 규정돼 있다. ‘교전 상태’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긴급명령권은 준전시 또는 전시 상황에서 발동된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는 긴급명령권 발동 요건에 포함돼 있지 않다. 강 대변인은 “지금은 아시다시피 교전상태라는 요건에 해당이 되지 않고 국회가 열려 있다”며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이 말한 긴급재정명령권은? 

그렇다면 여당이 말하는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은 현재 상황이 발동 요건에 해당할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5일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통과가 조금이라도 지체된다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이라도 발동해서 적시 대응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 요건은 헌법 제76조 1항에 명시돼 있다. ‘①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②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③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라는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현재 상황이 발동 요건에 모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①요건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이 발동되지 않았는데 지금이 그 이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②요건은 어떤 조치를 실시할지 명확하지 않아 긴급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③요건은 지금 국회가 열려 있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두 가지 요건은 해당하지 않고 한 가지 요건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심경수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의 해석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하다.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한다면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 요건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독재의 상징이었던 긴급명령 

박정희 정부에서 긴급조치가 발동되자 고려대 캠퍼스에 들어간 무장군인들이 고대생들을 교문밖으로 끌어내 연행해 가고있다. [중앙포토]

박정희 정부에서 긴급조치가 발동되자 고려대 캠퍼스에 들어간 무장군인들이 고대생들을 교문밖으로 끌어내 연행해 가고있다. [중앙포토]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긴급명령은 독재의 상징에 가까웠다. 과거 헌법은 긴급명령(박정희 정부에선 긴급조치)의 발동 요건을 폭넓게 인정해 긴급명령·조치가 대통령 권한 남용의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긴급명령·조치가 25번 발동됐는데, 이승만 정부에서 14번, 박정희 정부에서 10번 발동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려대 휴교나 유언비어 유포 처벌 등을 위해서까지도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1987년 개헌으로 긴급명령권의 요건은 엄격해졌다.

1987년 이후 사례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며 발동한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이 유일하다. 당시에도 위헌 논란이 있긴 했지만, 1996년 헌법재판소는 김 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은 발동되지 않았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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