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씨, 北공작원에 "내 신분 숨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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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율씨가 5일 서울 동빙고동 주한 독일대사관을 방문해 당직자와 면담한 뒤 대사관을 나서고 있다.[신인섭 기자]

송두율(宋斗律)씨는 1997년 2월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한 직후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소속 공작원에게 "황장엽이 망명했으니 내가 김철수라는 게 드러나지 않겠느냐. 내 신분이 밝혀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宋씨는 또 북한 대표부에 팩스를 보내 "지금까지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문건은 모두 파기해 주길 바라며 앞으로는 송두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오랫동안 宋씨를 내사해 오면서 이 같은 내용의 관련자 녹취록과 팩스사본을 확보했으며, 이번 宋씨 수사 과정에서 이를 증거자료로 제시했다고 5일 익명을 요구한 국회 정보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이 말했다. 공안당국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의원과 공안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99년 1월 미국으로 망명한 김경필 전 독일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서기관으로부터 宋씨가 김철수임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증언을 녹취했고, 그 내용을 조사를 받는 宋씨에게 들려줬다는 것이다.

김경필은 미국 망명 전까지 북한 노동당 대남(對南)부서인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宋씨와 긴밀한 접촉을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녹취록엔 黃씨 망명 직후 宋씨가 金씨에게 자신의 신분 은폐를 당부하자 金씨가 "당신이 김철수인 걸 황장엽은 잘 모를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대답한 대목이 들어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지난 1일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宋씨는 황장엽씨 귀순 후 독일주재 북한 공작원에게 자신의 정체를 감출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는 내용의 국정원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宋씨는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처음엔 자신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철수임을 강력히 부인하다 국정원이 金씨 증언을 담은 녹취록과 宋씨가 북한 측에 보낸 팩스 사본 등의 증거자료를 제시하자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한나라당 정보위원들은 전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정원은 宋씨를 내사하는 과정에서 관련국의 협조와 현지 조사를 통해 증거자료들을 수집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 같은 자료가 대부분 검찰로 간 만큼 검찰 수사 결과는 국정원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일.김원배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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