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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하랴 부탁하랴 전화기 불난 강경화···외교부 '준전시 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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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해외 출장을 갔던 영국에서는 ‘코로나 해프닝’이 벌어졌다.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예정된 한ㆍ영 외교장관 회담이 도미닉 라브 외교장관의 개인적 사정으로 당일 취소됐다. 강 장관은 맷 핸콕 보건부 장관을 만나는 것으로 대체해야 했다.

한·영 회담 취소는 영국장관 코로나 자가격리 탓

이후 일부 언론엔 강 장관이 '외교 결례'를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영국 외교부 대변인을 인용한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라브 장관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 중이었다고 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강 장관은 출장을 떠나기 전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자청해 ‘문제가 없다’는 확진을 받고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상대국 장관이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로 나오지 못한 일이 벌어졌던 셈이다.

#.1월 30~31일, 2월 11일 세 차례에 걸쳐 중국 우한 교민들의 전세기 수송 지원을 했던 동북아국은 주요 업무 담당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가 격리 상태다. 전세기를 탔던 동북아 2ㆍ3과장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14일간 자택 격리 상태에서 업무를 병행했다고 한다. 당시 신속대응팀장을 맡았던 이태호 2차관과 이상진 재외동포영사실장도 이후 대면 보고를 최소화하고, 마스크로 무장한 채 업무 보고를 받았다. 한 당국자는 “지금도 실ㆍ국장 회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교부는 보건 당국과 더불어 코로나 최전선에 서 있는 부처가 됐다. 발생 초기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띄워 자국민을 공수한 것은 물론, 이달 들어 전 세계 공항에서 한국인들이 입국 거부ㆍ격리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면서다.

2월 말 해외 출장으로 비판받았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귀국 후 하루에 많게는 서너 통씩 각국 외교 장관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 3일도 오전에는 중남미 엘살바도르 외교장관과 통화했고, 오후에는 인도ㆍ인도네시아 장관과 통화할 예정이다. 한국에 대해 입국 제한을 한 나라에 항의하거나, 제한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앞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에는 26일 영국 출장지에서 전화했고, 귀국 후인 1일 오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통화했다. 베트남·아랍에미리트(UAE)·캐나다·몰디브 측과도 통화했다.

지난달 1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지역에 체류했던 교민과 중국인 가족들을 실은 3차 전세기가 서울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성룡 기자

지난달 1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지역에 체류했던 교민과 중국인 가족들을 실은 3차 전세기가 서울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성룡 기자

각국 공항에 발이 묶인 한국인들을 지원해야 하는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은 “머리 깎을 시간도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준전시 상태다. 한 소식통은 “입국 제한 국가가 80여개 국으로 폭증하면서 전 세계 공관에서 날아드는 보고를 정리하는 것만 해도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본격적인 한국인 입국 금지·제한 러시가 일어난 2월 말부터 동북아ㆍ아중동ㆍ아세안ㆍ유럽 등 지역국들은 해당국에 항의와 유감 표명을 하는 데만도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중국, 이스라엘, 터키 등 주한 대사관 관계자들도 거의 매일 같이 외교부 청사로 드나들어야 했다.

지난 달 24일 서울 도렴동 정부청사별관(외교부 청사)에 발열체크를 위한 열화상기가 설치됐다. 한 쪽에는 손 소독제가 비치 돼 있고, 문진실도 생겼다. 이유정 기자

지난 달 24일 서울 도렴동 정부청사별관(외교부 청사)에 발열체크를 위한 열화상기가 설치됐다. 한 쪽에는 손 소독제가 비치 돼 있고, 문진실도 생겼다. 이유정 기자

이에 따라 ‘2말 3초’쯤으로 예상됐던 연례 재외 공관장 회의도 3월 중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부 국가에서 한국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중단ㆍ축소하는 바람에 공관장들이 당장 타고 올 비행편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의 코로나 확산 사태로 외국 인사들의 방한 일정 등 외교 캘린더는 상당 정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3일 기자들과 만나 “급이 높지 않은 회의나 방문들은 취소나 연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코로나 확산으로 UAE 외교장관의 방한이 순연됐다는 말이 외교가에 돌기도 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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