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가 큰 실수.”
미국 뉴욕타임즈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코로나19와 관련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2월 13일)을 소개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종식” 발언 나흘 뒤엔 “정상적인 일상활동과 경제활동으로 복귀해 달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9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
야권은 문 대통령의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었던 3ㆍ1절 기념식이 끝난 뒤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올바른 대책이 시작된다”(전희경 미래통합당 대변인)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 여부에 대해 청와대는 현재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 배경엔 행여 사과를 한다해도 현 시점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비롯한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 회동에서 초기 대응 실패를 언급하며 “대통령께서는 깊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문 대통령은 “상황이 종식하고 난 뒤 복기해 보자”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사과와 관련해 정리된 입장은 없다. 지금은 방역에 집중하고, 현안으로 떠오른 마스크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게 청와대가 할 일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사과를 머뭇거리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형적인 정치공세라는 판단 때문이다. 여권에선 기본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은 중국인 입국금지나 정부 대응 실패보다는 신천지라는 돌발 변수가 결정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소속의 한 수도권 의원은 “포괄적으로 본다면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코로나19 확대의 가장 큰 원인은 신천지 아닌가”라며 “그런데 덮어놓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건 그 자체가 지극히 정략적 자세”라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된 뒤 사과나 관련 언급을 할 것으로 본다"며 "다만 국민 다수가 아니라 야당의 요구에 끌려 사과를 한다면 향후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하지 않았다.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2018년 1월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해 죄송하다”고 했고, 부마 항쟁 등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사과도 있었다. 대부분 과거 정부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사과를 한다 해도 정치적 부담이 없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현 정부 정책에 사과한 경우도 있었다. 바로 최저임금 문제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정해지면서 ‘2020년까지 1만원’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문 대통령은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민노총 등을 고려한 달래기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관련해서도 사과를 했다. 다만 "국민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국 임명 자체는 사과하지 않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최고 지도자의 사과는 곧 책임론으로 이어지기에 그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사과하면 자칫 레임덕에 빠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임기는 4년차에 접어들었고, 총선은 불과 40여일밖에 남기지 않은 탓에 문 대통령이 설사 사과를 해도 야당의 공세가 멈출 가능성은 희박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 때 두 차례나 사과하면서 임기 첫해부터 흔들렸고, 박근혜 대통령은 태블릿 PC 사과와 함께 곧장 내리막길을 걸었다"며 "대통령 사과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아는 현 청와대가 쉽사리 등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