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머잖아 종식" 文 왜 사과 없나···與 엄습한 '4년차 레임덕' 걱정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6대 그룹 총수와 경영진을 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한 간담회를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6대 그룹 총수와 경영진을 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한 간담회를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가가 큰 실수.”

미국 뉴욕타임즈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코로나19와 관련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2월 13일)을 소개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종식” 발언 나흘 뒤엔 “정상적인 일상활동과 경제활동으로 복귀해 달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9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

야권은 문 대통령의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었던 3ㆍ1절 기념식이 끝난 뒤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올바른 대책이 시작된다”(전희경 미래통합당 대변인)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 여부에 대해 청와대는 현재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 배경엔 행여 사과를 한다해도 현 시점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비롯한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 회동에서 초기 대응 실패를 언급하며 “대통령께서는 깊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문 대통령은 “상황이 종식하고 난 뒤 복기해 보자”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사과와 관련해 정리된 입장은 없다. 지금은 방역에 집중하고, 현안으로 떠오른 마스크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게 청와대가 할 일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논의를 위해 여야 정당대표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성엽 민생당 공동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대통령,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논의를 위해 여야 정당대표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성엽 민생당 공동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대통령,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뉴스1]

사과를 머뭇거리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형적인 정치공세라는 판단 때문이다. 여권에선 기본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은 중국인 입국금지나 정부 대응 실패보다는 신천지라는 돌발 변수가 결정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소속의 한 수도권 의원은 “포괄적으로 본다면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코로나19 확대의 가장 큰 원인은 신천지 아닌가”라며 “그런데 덮어놓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건 그 자체가 지극히 정략적 자세”라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된 뒤 사과나 관련 언급을 할 것으로 본다"며 "다만 국민 다수가 아니라 야당의 요구에 끌려 사과를 한다면 향후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하지 않았다.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2018년 1월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해 죄송하다”고 했고, 부마 항쟁 등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사과도 있었다. 대부분 과거 정부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사과를 한다 해도 정치적 부담이 없었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일 오후 대전 충남대병원 선별진료소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성태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일 오후 대전 충남대병원 선별진료소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성태 기자

문 대통령이 현 정부 정책에 사과한 경우도 있었다. 바로 최저임금 문제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정해지면서 ‘2020년까지 1만원’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문 대통령은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민노총 등을 고려한 달래기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관련해서도 사과를 했다. 다만 "국민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국 임명 자체는 사과하지 않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최고 지도자의 사과는 곧 책임론으로 이어지기에 그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사과하면 자칫 레임덕에 빠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임기는 4년차에 접어들었고, 총선은 불과 40여일밖에 남기지 않은 탓에 문 대통령이 설사 사과를 해도 야당의 공세가 멈출 가능성은 희박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 때 두 차례나 사과하면서 임기 첫해부터 흔들렸고, 박근혜 대통령은 태블릿 PC 사과와 함께 곧장 내리막길을 걸었다"며 "대통령 사과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아는 현 청와대가 쉽사리 등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