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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듀]'초등 영재'를 '고교 둔재'로 만드는 '나쁜 칭찬'은?

중앙일보

입력

"성적이 인생을 결정한다"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부의 영향력을 부정하는 학부모는 없다. 기왕 하는 공부, 자녀가 상위권에 있기를 바란다. 행여 자녀가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영재반을 알아본다. 그런데 이게 인생의 원리인지는 몰라도, 최상위권의 자리는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좁아지게 돼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졸업 이후(예를 들어, 대기업)로 가면 갈수록, 소위 전교 1등'들' 중에서 다시 전교 1등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학교 때 전교 1등이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평범한, 심지어 꼴찌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지하나 샘의 교육을 부탁해 #과정아닌 결과에 대한 칭찬은 '독'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자세 격려해야

중 3 학부모들이 상담을 요청할 때, 자녀가 상위권이다 싶으면 대부분 "수시에 유리한 일반고로 진학할 것이냐, 아니면 학습 분위기가 좋은 특목고를 선택할 것이냐?" 에 대한 고민일 때가 많다. 이때 자녀의 성적을 보고 결정하기 쉽지만, 그랬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히기 쉽다. 어차피 고등학교를 염두에 두고 일찍이 사교육을 받아왔던 아이들에게, 중학교 시험은 상대적으로 '쉽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100점 수준도 100점이요, 200점 수준도 100점으로 나오는 것이다.

또는 중학교 때 감춰졌던 강점과 약점이 고등학교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중학교 때의 순위가 고스란히 고등학교로 연결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성적 말고 무엇이 좋은 기준이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해서, 부모로부터 어떤 반응(피드백)을 받으면서 성장했느냐에 달렸다. 이를 교육학에서는 '결과 중심의 피드백'과 '과정 중심의 피드백'으로 나누며, 긍정적인 결과는 절대적으로 후자에서 나온다고 본다.

어떤 결과에 대해서 그 결과를 중심으로 반응하는지, (오 100점이야? 잘했어!!) 아니면 그 준비 과정에 대해 반응하는가(시험 보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확인하고 갔구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저 집안 분위기의 차이로 들릴 수도 있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자녀의 교육 환경이 얼마나 성숙하고 실질적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도 된다. 시험을 보고 나온 자녀에 대해 부모가, 학교 선생님이, 학원 강사가 어떻게 반응할지 떠올려보라. 제일 먼저 나오는 첫 마디로 "잘 봤어?" 또는 "몇 점이야?"가 연상된다면, 이 부분에서 우리의 성숙도는 서글픈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번은 EBS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동일한 시험지 두 개를 놓고 A는 어려운 시험, B는 쉬운 시험이라고 알려준 다음 아이들에게 풀고 싶은 시험지를 선택하게 했더니, 2/3의 아이들이 B를, 1/3이 A를 선택했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시험지 선택의 이유를 물었더니, B를 선택한 아이들의 이유는 점수를 잘 받고 싶어서였으며, A를 선택한 아이들은 그저 '재밌을 거 같다'는 것이 이유였으며, 그 이후에도 또 다른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 적극성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도전 자체를 칭찬받는 환경, 즉 과정 중심의 피드백을 받아온 아이들이다. 이와 반대로 결과 중심 피드백을 받아온 아이들(B)은 결과가 불분명한 도전을 두려워하며, 필요 이상의 학습을 하지 않으려 하고, 결과를 얻지 못한다 싶으면 지나치게 위축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유형의 자녀는 자기보다 뛰어난 아이들이 많을 때,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예 손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중학교 때 '한때 영재'였다가 갑자기 방황이 시작되어, 정신과 상담까지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찌 보면 "공부를 '안'하는 것뿐이지 '못'하는 게 아니다"라는 자기 위안일 수도 있는데, 그만큼 노력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설령 결과가 나오지 않을 상황에서도,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품!! 한 사람의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나는 이런 아름다움이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그런 교육 문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을 둘러싸고 있는 교육 환경으로써의 우리 가치관이 변해야 한다. 결과 '따위'야, 과정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학부모로서 과정 중심 피드백을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점수보다 태도와 자세에 반응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칫 점수를 놓고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면 자녀는 어려운 문제를 기피하게 될 것이다. 점수에 대해서는 작게 반응하고, 도전 정신과 근성, 독창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크고 열정적으로 칭찬해 주도록 한다.

둘째. 과정이 잘못되었으면 결과가 좋아도 칭찬하지 않는다.

부모가 결과를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는 자칫 부정행위를 통해서라도 결과를 얻으려 할지도 모른다. 또는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결과가 좋을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결과 중심 부모는 자칫 '머리가 좋다'라는 칭찬으로 흐르기 쉽다. 가뜩이나 고등학교보다 중학교 시험이 쉽게 출제되기 때문에, 자녀는 중학교 내내 머리를 믿고 노력하지 않다가 고등학교에서 좌절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실패했을 때 혼내지 말고, 스스로 교훈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어린 시절의 성공이라고 해봤자, 긴 시야로 보면 별거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설픈 결과에 매달리기보다, 실패를 통해 그릇을 다듬는 기회로 삼자. 자칫 어떤 특혜를 이용해서 '자잘한' 성과를 거두게 한다면, 그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도록 저주를 내리는 셈이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자녀가 자격증 시험에 신분증을 까먹었을 때, 협회가 양해해 준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불합격을 요청했다고 한다. 다소 과격한 방식일 수 있지만, 자녀가 이번 실패를 통해 쓰디쓴 교훈을 얻는 것이 눈앞의 자격증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자녀라면, 그 자격증보다 훨씬 뛰어난 성취를 얼마든지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지하나 덕소교 교사

 남양주 덕소고 교사. 23년 차 베테랑. 한문 교사이자 1급 학습 코치 및 전문상담교사. 취미이자 직업이 학생 상담. 1000여 명의 학생의 학습 심리 테스트를 진행했다. 자기 주도 학습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학교에서 ‘자기 주도 학습 클리닉’과 ‘학종내비게이션’(학종 지도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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