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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간 나오지마” 대문 빨간딱지···강제격리 내몰린 中교민들

중앙일보

입력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양재경 중국 충칭 한인회장 자택 문이 빨간 딱지로 봉인됐다. [양재경 제공]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양재경 중국 충칭 한인회장 자택 문이 빨간 딱지로 봉인됐다. [양재경 제공]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의 어려움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돌아온 교민들에 대한 호텔 강제 격리는 물론이고, 자가 격리 중인 자택의 문을 봉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의 통화에서 "과도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집앞에 CCTV 설치, 예고도 없이 사실상 '감금'

한국과 가깝고 인건비가 저렴해 신발, 봉제 등 중소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산둥(山東)성 칭다오(青岛)시.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양재경 중국 충칭(重慶) 한인회장은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이 봉인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충칭과 칭다오를 오가며 일을 해 칭다오에도 자택이 있다.

한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시킨 다음 날인 24일 칭다오에 입국한 그는 이날만 해도 공항에서 나올 때나 아파트 출입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양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칭다오의 또다른 한국 교민의 집 역시 봉인됐다. [이덕호 칭다오 한인회장 제공]

칭다오의 또다른 한국 교민의 집 역시 봉인됐다. [이덕호 칭다오 한인회장 제공]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나.
25일 점심 때쯤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조심해서 다니라고 했다. 파출소에서도 연락이 와서 상세하게 한국 주소와 한국 어디 어디를 다녔냐고 다 묻더라. 그래도 그때만 해도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집을 봉쇄한 건 언제인가.
26일 오후 2~3시쯤이다. 누군가 아파트 문에 빨간 딱지를 세 장 붙여놓았다. 그냥 붙인 게 아니고 문과 벽을 이어 붙여놨다. 못 열게 하려고 한 것이다. 처음엔 그런 사실도 몰랐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14일간 밖으로 나가면 안 되니까 딱지를 붙여놨다고.
사전 고지도 없었다는 건가.
예고도 없이 붙여놓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나가면 안 되니까 1주일에 3번은 쓰레기를 버리고 생필품이 필요하면 관리실에서 사다 넣어주겠다고 하더라.

그는 황당한 듯 말하면서 여러 번 헛웃음을 웃었다. 부인은 격리 기간 14일이 지났는데 양씨가 들어오면서 다시 격리된 상태다.

다른 교민들도 비슷한 상황인가.
계속해서 집을 봉인하고 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칭다오도 넓으니까 지역별로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또 여러 다른 교민들은 집 앞에 CCTV를 달고 갔다고 한다. 집 밖으로 못 나가게 감시 카메라까지 달았다는 거다. 한국 식당들이 몇 개 문을 열어 오는 분들 기록을 남기고 영업하게 했는데 파출소에서 와서 그것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가서 밥을 먹으니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루아침에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칭다오시 지침이라고 보나.
 정확히 알 순 없다. 다만 칭다오 한인회와 총영사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접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지 중국인들은 현재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나.
 내 위챗(중국식 카카오톡) 계정에 수천 명이 연결돼 있다. 중국 친구들이 많은데 지난 주말 서울의 광화문 집회 영상이 중국어로 번역돼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있다. 서울시장이 집회하지 마라고 하는데 전광훈 목사가 비웃는 장면이 다 나온다. 전염병이 위험한 상황에서 집회해도 막지 못하니까 중국 친구들이 비웃는다. 그런 걸 돌려보면서 한국인들 위험하다고 피한다. 
광저우 한국 교민의 집 역시 봉인되면서 강제 격리 조치에 들어갔다. [김관식 광저우 한인회장 제공]

광저우 한국 교민의 집 역시 봉인되면서 강제 격리 조치에 들어갔다. [김관식 광저우 한인회장 제공]

비슷한 상황은 중국 남부 광저우(廣州)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김관식 광저우 한인회장의 자택 역시 봉인됐다. 김 회장은 지난 14일 광저우에 돌아왔다. 2주간 자가 격리는 28일에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26일 지역 동사무소 직원들이 찾아와 출입문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남은 이틀간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사전 연락은 받았나.
'언제 누가 격리하러 가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고 26일 오전에 연락이 왔다. 동사무소 직원과 아파트 경비원이 같이 와서 머리에 열을 재고 불편해도 집에 있어라. 필요한 걸 말하면 사다 주겠다고 하고 딱지를 붙이고 갔다.
다른 교민들 상황도 마찬가지인가
비슷하다. 딱지를 붙이는 기준은 모르겠는데 어떤 분들은 자가 격리한다는 분도 있고, 딱지 붙여서 강제 격리하는 분들도 있다. 집에 찾아온 직원은 외국에서 들어온 모든 사람에 대해 국적 구분 없이 다 한다고 하더라.
지방 정부가 왜 이런다고 보나.
 자기네들(중국인)은 통제가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통제해서 점차 가라앉고 있는데 통제하지 않던 한국인들이 들어와서 다시 전염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강하게 하는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지정 장소로 바로 격리되는 교민 수도 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27일 정오를 기준으로 산둥성 웨이하이와 옌타이(煙台),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지린(吉林)성 옌지(延吉),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등에서 공항 도착 직후 격리된 한국인 수가 24일부터 사흘간 226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95명은 자가 격리로 전환 됐고 나머지 131명은 여전히 호텔에 격리돼 있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당국은 지난 25일 LG디스플레이 사업장에 한국에서 온 직원을 14일간 격리 조치한다고 통보했으나 주광저우총영사관의 재검토 요구를 받고 당일 밤 해당 조치를 취소하기도 했다.

지난 25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 공항에 들어온 뒤 현재까지 호텔에 격리된 교민 이모씨(43)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안들이 와서 직접 조사하고 격리했다"며 "한국인과 중국인을 분리해서 버스에 태웠고 조사도 따로 받았다"고 전했다.

장쑤성 우시시(無錫市)의 한 교민은 "마트에서 한국인이 물건도 사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무슨 벌레 취급당하고 있는 기분"이라고도 말했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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