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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당·정 엇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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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 경기부양책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권오규 경제부총리)

"경기변동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27~30일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CEO 포럼에서 경제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여당의 뚜렷한 입장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28일 강연한 권오규 부총리는 "단기 대증요법을 지양하고 원칙과 정도에 입각한 거시경제 관리를 해나간다는 정부 기조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 악화의 '주범' 소리를 듣는 건설 경기에 대해서도 "재정을 투입해 토목공사를 벌여 경기를 살리는 프레임은 이제 작동하지 않으며, 부동산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주택건설에 관한 규제를 풀 수도 없다"며 부양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다음날 강봉균 의장은 "현 정부 경제팀은 아직도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정부보다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며 경기 인식에 대한 시각차를 분명히 했다. 강 의장은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관리해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효과를 기다리기엔 음식.숙박업.택시 등 서민 경기와 직결된 업종의 불황이 너무 깊다는 것이다. 포럼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도대체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된다는 소리냐"며 혼란스러워했다. 하반기 경제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두 사람이 서로 딴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28일 제주도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했다. 사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는 기업 투자는 금리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표현을 썼다. 초고금리 시대에 이병철.정주영 같은 기업가는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아무리 금리가 낮아도 미래의 사업성이나 투자환경이 나쁘다고 판단하면 기업인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투자를 안 하는 것도 야성적 충동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당정의 불협화음을 보면서 케인스가 말했던 야성적 충동은 기업인에게 뭐라고 속삭일까. 기업 투자의 부족을 탓하기 전에 정부와 여당의 엇박자부터 좀 없앴으면 한다.

이현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