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추미애? 트럼프 최측근 구형량 낮춘 美법무 사퇴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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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해 사법부의 정치 중립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해 사법부의 정치 중립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 대한 사퇴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바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에 대한 검찰 측의 구형량을 낮춰주면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을 훼손했다는 논란 때문이다.

바 장관 사퇴 촉구 공개성명서에 2000여명 서명

전직 법무부 관리들은 16일(현지시간) 인터넷에 공개 성명서를 내고 바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성명서에 서명한 전직 법무부 관리들 숫자는 하루 만에 1143명에서 2000명으로 늘었다.

문제가 된 케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로 기소된 그의 측근 로저 스톤의 재판이다. 검찰이 7~9년을 구형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트윗으로 검찰을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대체 이 4명의 검사는 누구냐”라며 “(검사들이) 불법 수사에 당한 사람에게 9년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형량을 구형하고 황급히 도망갔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수사’라고 주장한 것은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조사다. 뮬러 특검은 러시아가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에게 유리하게 판을 흔들기 위해 개입했다는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했다. 스톤은 이 과정에서 위증 및 증인 매수 등 7개의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법정에 출두하는 로저 스톤. 트럼프의 최측근이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법정에 출두하는 로저 스톤. 트럼프의 최측근이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후 법무부는 “스톤에 대한 구형량을 낮추겠다”라고 전격 발표했다. 바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다”고 말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 됐다.

해당 검사 4명은 바로 사직서를 냈다. 항의 표시였다. 바 장관에 대해선 “트럼프의 하수인”(뉴욕타임스), “트럼프의 장난감”(워싱턴포스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공격은 검사뿐 아니라 판사에게도 이어졌다. 로저 스톤 사건을 담당하기로 예정된 에이미 잭슨 판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 판사가 바로 (내 측근인) 폴 매나포트를 독방에 감금했던 그 사람인가”라며 “그 독방에선 조직폭력배 알 카포네도 못 버틸 정도”라고 주장했다.

바 장관은 지난 14일 “대통령이 법무부 소관 사건에 대해 트윗을 이젠 그만해야 한다”며 “트윗 때문에 일을 못 할 지경”이라고 폭로했다. 생방송 인터뷰에 출연해서다.

‘충복’으로 통하는 바 장관의 이런 언급을 두고 미국 언론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바 장관이 견디다 못해 트윗에 대한 나름의 항의를 했다는 해석과 바 장관이 자신도 트럼프에게 할 말은 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언급을 했다는 해석 등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법정에 선 최측근들을 트위터를 이용해 적극 옹호해왔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법정에 선 최측근들을 트위터를 이용해 적극 옹호해왔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바 장관에 대한 법무부 안팎의 신뢰는 위험한 수준이라는 게 미국 매체들의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바 장관의 사퇴를 요구한 공개 성명서도 큰 파문을 낳고 있다. 비교적 트럼프 행정부에 객관적인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법무부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 공개 성명서가 나왔다”고 표현했다.

성명서는 또 “법의 힘을 이용해 정적은 벌주고 친구들은 보상하는 정부는 공화국이 아니다. 독재국가다”라고 비판했다. 성명서는 또 "바 장관이 대통령의 트윗 때문에 일을 못 할 지경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행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원하는 바를 실행에 옮겼다"면서 “바 장관의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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