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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격리환자의 SO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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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격리 해제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병원에 막 격리될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1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21세기병원에 격리된 A씨의 전화 수화기 너머 음성은 들떠 있었다. 그는 “격리 초반에는 혼란스러웠지만, 환자들 모두가 오는 20일 격리가 해제될 날만 꼽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이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4일부터 격리된 입원환자 24명 중 한 명이다.

A씨의 아찔한 경험은 지난 6일을 전후로 병원에서 벌어진 일을 말한다. 당시 환자들은 병원 내부로 생필품이 제때 보급되지 않아 큰 불편을 겪었다. 또 마실 생수까지 떨어져 환자 대부분이 복도 한쪽에 놓인 공동 정수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이날 오후 한 격리환자가 쓴 메모가 외부로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흰 종이를 찢어 만든 쪽지에는 ‘생필품이 부족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화장지·생수·치약·물’ 등이 적혀 있었다. 당시 환자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에는 휴지가 널려있고, 쓰레기도 치워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격리된 병원 내부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보건당국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확진자와 같은 층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고위험군으로 격리해놓고도 환자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서다.

환자들에 대한 ‘1인 격리’가 뒤늦게 이뤄진 점도 비난을 샀다. 앞서 보건당국은 지난 5일 오전 10시 “(21세기병원의) 3층 환자들을 격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1인실 격리가 완료된 것은 30시간이 지난 6일 오후 4시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보건당국은 부랴부랴 환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광주시와 광산구가 지난 6일 오후부터 생필품과 생수·라면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게 시작이었다. 광산구는 청소요원들을 투입해 병원 안팎과 화장실·세면장 등에 대한 청소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노력에도 보건당국의 늑장대응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초 보건당국은 16번째 확진자에 대한 신종 코로나 감염을 의심한 21세기병원 측의 검사요청을 거절하는 등 번번이 뒷북대응을 해와서다. 현재 21세기병원 등에는 신종 코로나 사태 전부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온 환자들이 격리돼 있다. 몇 달째 병원에 갇힌 환자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보건당국의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때다.

최경호 광주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