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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뒤 재판" 통합당측 요청에, 판사 "피고 바쁘다고 미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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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5일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이 국회 의안과 앞에서 경호권발동으로 진입한 국회 경위들을 저지하며 헌법수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4월 25일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이 국회 의안과 앞에서 경호권발동으로 진입한 국회 경위들을 저지하며 헌법수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

"국회의원이라고 특권을 가질 수 없다. 피고인이 바쁘면 피고인 사정 때문에 재판을 미뤄야 하나?"

17일 오전 11시쯤 서울남부지법 406호, 형사합의 11부 이환승 부장판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4월 국회에서 벌어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미래통합당(옛 자유한국당 소속)의원들의 첫 재판에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이날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강효상·민경욱·김성태·장제원 등 미래통합당 의원 및 보좌진 3명 등 27명에 대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1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이는 정식 재판 전 재판부와 검찰, 피고인(변호인)이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방법을 논의하는 절차로 피고인 출석 의무는 없다. 이날 피고인들은 모두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인정한다"면서도 피고인들이 벌인 물리적 충돌 사태는 저항권 행사로 '위법성 조각사유가 충분한 행위'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국회 속기록, 영상 등의 자료로 남아있는 물리적 충돌에 관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당시 국회에서 열린 회의 자체가 적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외장하드 가져오라" 변호인 "3개 주문해뒀다" 공방

변호인단은 "다음 공판준비기일을 총선 뒤로 미뤄달라"고 요청하며 검찰 및 재판부와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시작부터 "사건 증거가 2만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매우 방대하며 디지털 자료 증거 등 검토를 하는데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며 "다음 기일을 4월 15일 총선 이후로 정해달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날짜를 정하자는 게 아니라 공소 사실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과 재판 진행 방식에 대해 말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4월 26일 나경원 원내대표 등 옛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사법개혁특위가 열리는 국회 회의실 앞에 드러누워 이상민 위원장 등 참석자 진입을 막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4월 26일 나경원 원내대표 등 옛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사법개혁특위가 열리는 국회 회의실 앞에 드러누워 이상민 위원장 등 참석자 진입을 막는 모습. [연합뉴스]

검찰 측은 "시간 확보를 위해 검수작업 등 오래 걸리는 작업을 미리 해 증거를 준비했다"고 변호인단의 주장을 맞받았다. 결국 변호인단과 검찰 측은 증거 자료 분량과 관련해 공방을 벌이다 "언제든 외장하드를 가져오라"(검사) "2테라바이트 짜리 3개 주문해 둔 상태"(변호인)라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준비기일에서 쟁점을 따지려면 선거 전에 해야 피고인 개개인의 선거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했다.

변호인 "이 사건만 하는 게 아냐"에 판사 "재판부도 마찬가지" 

이후 변호인단은 재판부와 논쟁을 벌였다. 재판부는 "준비기일을 늦게 잡으면 하염없이 길어진다"며 "사실관계를 다투는 경우면 증거를 면밀히 보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사건은 공소사실 자체를 다투는 문제는 아니라 증거검토가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변호인단은 "변호인단은 이 사건 하나에 집중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고 이에 재판부도 "재판부도 마찬가지로 이 사건만 보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변호인단은 "총선 준비 때문에 재판 준비가 어렵다"고 거듭 호소하며 "검찰의 프레임에 재판부와 변호사가 따르라는 것이냐"고도 말했다. 결국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총선 이후인 4월 20일로 정했고 변호인단의 거듭된 이의 제기에 4월 28일로 조정했다.

미래통합당 의원과 당직자들은 지난해 4월 ▶국회 의안과에서 법안 접수를 방해하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를 방해한 혐의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 감금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편 이날 오후 범 보수진영 통합신당인 미래통합당이 공식 출범했다. 미래통합당에는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 등 3개 원내정당과 일부 안철수계 의원 등이 합류했다.

함민정·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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