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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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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전철 안에서 무심코 승객들을 바라보다가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휴일이라 승객들은 한 칸에 서른 명 정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다섯 명뿐이었다. 이 정도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무관한 평범한 겨울의 일상이다.

일본에선 ‘신종 코로나’로 인해 휴교했다는 소식은 없다. 확진자가 갔던 백화점이 문을 닫거나, 회사가 통째로 휴무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오히려 확진자의 동선을 세세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개인 정보이며 정보 공개가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고 확진자 동선을 공개한 오사카부(大阪府)조차 확진자가 어느 가게에 갔는지,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유명 관광지인 신사이바시(心斎橋)와 오사카성을 휘젓고 다녔는데도 말이다. “사생활을 어디까지 제한하나”라는 지적이 언론에서 나왔다.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는 남의 나라 사정이었다. “일본의 의료시스템 하에선 걱정할 게 없다”는 의료전문가들의 말이 TV에선 반복됐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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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현재 크루즈선 안에서만 218명의 감염자가 확인됐다. 멀쩡하던 검역관까지 감염되고, 인공호흡기를 단 중증환자가 나오면서 일본 정부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왜 탑승자 전원 검사를 하지 않냐”라고 아우성이지만 일본 정부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반 병원에서도 검사를 하면 될 일을 정부연구소가 틀어쥐고 있는 바람에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처음부터 증상이 없는 사람은 하선시켰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행의학 전문의인 구스미 에이지(久住英二)는 “자가 격리를 하면서 경과를 관찰하거나 외국인은 자국으로 돌려보내면 된다. 일본 의료체계에선 외국인이 절반인 3700명을 동시에 돌본다는 건 불가능”이라고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국내 불만을 없애려다가 환자만 늘리는 꼴이 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아베 정부는 실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베 정부가 사태를 감싸는데 급급한 데엔 5개월 뒤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의식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관가에선 올림픽 예선을 국내에서 치르지 못하거나 만에 하나 연기설이라도 나오면 큰일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크루즈선 사건이 아베 정권의 최대 오점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아직도 야당의 발목을 잡고 있듯 말이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