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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황혼 세대가 된 2000년 황금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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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은 미국을 꺾고 우승했다. 당시 대표팀은 고교 3학년 선수들로 구성됐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에 태어난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한화 이글스), 정근우(LG 트윈스·이상 38) 등이다. 프로 선수가 된 뒤로도 10년 넘게 한국 야구를 대표한 이들은 ‘황금 세대’로 불렸다.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 우승 멤버 #10여년 한국 야구 간판, 올해 38세 #훈련 앞장, 야구 인생 마지막 싸움

한국 야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들이 야구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아직은 젊은 후배와 경쟁할 만하지만, 힘과 스피드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마흔 살을 앞둔 나이에 계약도 쉽게 풀릴 리 없다. 2020년, 이들은 야구 인생의 마지막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이대호

이대호

롯데의 호주 애들레이드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이대호는 벌써 얼굴이 까맣게 그을렸다. 휴식기였던 지난달 초 사이판으로 훈련을 떠나 3주 동안 몸을 만들었다. 평소 체중이 130㎏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 이대호는 사이판 훈련에서 15㎏을 감량했다. 지금도 숙소에서 훈련장까지 버스로 이동하지 않고 40분 동안 걷는다. 운동량을 늘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이대호는 지난해 타율 0.285, 16홈런, 88타점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그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시즌 막판 2군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롯데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로 인해 롯데는 사장과 단장, 감독까지 바뀌었다. 롯데 소속 자유계약선수(FA)였던 손승락(38)이 계약하지 못한 채 은퇴하는 등 베테랑을 대하는 구단 분위기가 냉랭하다.

올해로 총액 150억원의 4년 계약이 끝나는 이대호도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대호가 어느 해보다 절박하게 시즌을 준비하는 이유다. 이대호는 “지난해 팀 부진은 내 책임이다. 올해는 내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이 올라가야 한다. 기량은 아직 자신 있다. 지금까지 계약을 생각하고 야구를 한 적은 없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호는 날렵해진 몸으로 1루 수비까지 하고 있다. 올해도 지명타자를 맡을 전망이지만, 전준우 등과 번갈아 1루수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자신이 수비까지 한다면 팀 공헌도가 높아질 거라 기대한다.

김태균

김태균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에서 한화 동료들과 훈련 중인 김태균도 비슷한 심정이다. 2000년 한화 입단 후 줄곧 중심타자로 활약한 김태균은 지난해 타율 0.305, 6홈런, 62타점에 그쳤다. 그도 이대호처럼 시즌 중 2군에 다녀왔다. 팀 내 최고 타율을 기록했지만, 기대치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였다.

김태균은 지난 시즌 직후 FA 자격을 얻었다. 2년 계약이 이뤄질 거라 예상됐는데, 시장은 얼어붙었고 협상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난달 말 캠프로 떠나기 직전 김태균은 “올해 좋은 성적을 내서 재평가받겠다”며 1년(10억원) 계약을 구단에 제안했다. 김태균은 “2018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한화가 지난해 하위권(9위)으로 떨어졌다. 후배들과 함께 재도약하고 싶다. 타격 정확성은 자신 있다. 떨어진 장타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2년생 친구들 모두 힘내자”며 웃기도 했다.

정근우

정근우

2013년까지 SK 와이번스의 전성기를 이끌다 한화로 이적한 정근우는 지난해 말 2차 드래프트 보호 선수(40명) 명단에서 빠졌다. 정근우는 자신의 포지션인 2루수를 정은원에게 물려주고 2018년부터 외야수로 뛰었다. 2루수 정주현(30)의 경쟁자를 찾고 있었던 류중일 LG 감독은 정근우 영입을 결심했다.

한화에서 정근우는 주전 경쟁에서 조금씩 밀렸다. 지난해 4위이자 올해 우승을 노리는 LG에서 뜻밖의 기회를 잡았다. 정근우는 “다시 2루수로 뛸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예전 기량을 100% 찾을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하겠다. LG에 도움 주고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테랑 정근우는 젊은 후배로 구성된 캠프 선발진에 합류, 지난달 21일 일찌감치 호주 시드니로 날아가 훈련 중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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