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이상·김유정이 동반자살을 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그 이상은 없다

오명근 지음, 상상공방
208쪽, 9500원

경성역에서 작가 이상(李箱)이 커피 한잔 할 요량으로 주머니를 뒤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장안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고 들고 일어났던 시대. 소설가 구보씨가 종로 네거리에서 노는 계집들을 훔쳐보던 시절. 미숙하지만 섬세했고 궁핍하지만 치열했던, 마치 우리들의 '청춘'과도 같았던 식민지 조선의 1930년대.

한국근현대문학사가 전통적으로 짝사랑해왔던 이 시기가 최근 역사학계의 확대경까지 받으며 사료가 꽤 쌓였다. 신간은 이런 팩트(fact)들의 반죽에다 21세기 포스트 모던보이의 상상력을 가미해 '30년대 문화예술인의 초상'이라는 팩션(faction)을 구워냈다. 이 속에선 백석.김유정.박태원.임화.모윤숙 같은 인사들이 친구.연인.라이벌로 얽힌다. 저자는 이들의 특징을 '낭만성과 이념성 사이의 갈등'으로 보고 정사(正史)에 없는 속인(俗人)의 생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과연 이상이 '폼나는' 종말을 위해 김유정과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에피소드라던가 저자가 백석의 '나타샤'를 추리하기 위해 가상 인터뷰를 시도하는 대목 등에서 기발함이 엿보인다. 당대 문단의 이념 논쟁을 열혈청춘의 '객기'로 읽어내는 시선도 신선하다.

그러나 반죽과 효소의 배합이 잘못 된 걸까. 얼개는 씹는 맛이 떨어지고 문장에선 인공조미료가 배어난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저자의 '만담'이 너무 튄다. 이상이 '해리 포터'에 나오는 '아바다 케다브라' 주문을 외는 데 이르면 해학이 지나쳐 엽기라는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픽션과 팩트의 기계적인 결합에 그친 점이 아쉽다.

강혜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