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개막작 '도플갱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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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막을 올린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黑澤淸.48.사진)감독 은 기타노 다케시와 더불어 현 일본 영화를 이끌고 갈 기둥으로 꼽힌다. 최근 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본 감독이기도 하다.

'도플갱어'는 분신(分身)이라는 제목 뜻 그대로, 어느 날 자신의 분신과 마주치게 된 한 과학자의 이야기다.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하야사키(야쿠쇼 고지)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점점 병적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어느 날 또 다른 자아인 도플갱어가 나타난다. 이 도플갱어는 난폭하고 능글맞은 성격이 하야사키와 정반대다. 도플갱어를 혐오해 쫓아버리려 애쓰던 하야사키는 그 덕분에 프로젝트가 성공하자 점차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고 늘 변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르다. 그렇다면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나면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두 자아가 만나면 과연 어떤 상황이 빚어질까를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도플갱어라는 소재는 그간 수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할리우드산(産)으로는 드루 배리모어가 주연한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다. 구로사와 감독은 두 자아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1960~70년대 미국 영화에서 유행했던 화면 분할 기법을 써 매우 인상적으로 처리한다.

스릴러로 진행되던 이 영화는 후반부에 새롭게 변신한다. 엄청난 금전적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가 성공하자 관련된 사람들이 일제히 본성을 드러낸다.

구로사와 감독은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살인과 폭력을 우스꽝스럽게 처리한다. 삽을 들고 사람 뒤통수를 치려다 그 사람이 돌아보자 "죄송하다"고 머리를 굽신거리는 등의 장면이 일례다. "'도플갱어'는 처음부터 코미디다. 박장대소하면서 봐달라"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어딘지 블랙 코미디 냄새가 난다.

구로사와 감독은 83년 '핑크 무비'라고도 하는 로망 포르노 '간다천(川) 음란전쟁'으로 데뷔했다. 로망 포르노는 일반 영화와 에로 영화의 중간 격이라 할 수 있는 성인물.

이후 97년 미스터리 스릴러 '큐어'를 비롯해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카리스마'(99년), '거대한 환영'(99년)을 비롯해 '강령'(2000년), '회로'(2001년) 등으로 해외 무대에서 명성을 쌓았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는 '도플갱어'말고도 '해파리'가 상영된다.

부산=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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