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 우물 오뚝이 인생"| (전 동아 출판사)김상문 회장 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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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아 원색 세계대백과사전(30권)을 출간했다가 4백억여원의 부채를 못 이겨 동아출판사를 두산그룹에 넘겨줬던 김상문 전 동아출판사 회장이 새 출판사를 내고 재기에 나서 업계의 관심을 끌고있다.
김 회장이 7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재 창업에 도전한 것은 출판이 인생의 전부인 외곬기업인인데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집념 때문. 더구나 장남인 김윤진씨(42)도 가업을 잇겠다고 다짐, 살던 집을 처분하고 전 재산을 새 사업에 쏟아 부었다.
김 회장은 5년 전 만해도 종업원 2천명, 연간 매출액 l천억원의 동아출판사·동아인쇄 공업(주)·학연사 등을 거느렸던 한국 최대의 참고서 재벌. 한때 「출판계의 황제」로까지 불렸던 그이지만 이제는 상문각·상문 출판사 등 2개의 출판사에 20여명의 종업원을 데리고 있는 군소 출판사의 대표에 불과하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게된 것이다.
김 회장은 대구 사범학교를 나온 뒤 43년 동아프린트 사를 차려 등사업으로 출발, 오늘의 동아출판사를 키워낸 장본인이다.
45년 10월 이효상 전 국회의장 (작고·미 군정시 경북도 학무국강)의 부탁으로 한국 최초의 한글 독본인 『신생 국어독본』을 만들었고 동아전과·수련장 등 연간 8백여 종의 서적을 출간했었다.
그러나 출판인으로서의 마지막 사업으로 『동아원색 세계대백과 사전』의 편찬에 나섰다가 7년만에 1백50여억 원을 들여 사전은 완간했으나 결국 사채를 감당 못해 85년 2월「외곬기업」을 고스란히 남의 손에 넘겨주었던 것.
김 회장은 회사를 정리하면서 살고 있던 집과 퇴직금 1억여원을 두산그룹으로부터 받은 것이 전 재산. 퇴직금을 받을 때 「향후 5년간 출판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두산그룹 측에 써 주었고 4년 반만에 두산 측에서 각서를 무효화해 지난 4월과 8월 상문 출판사와 상문각을 각각 등록했다.
쉬는 동안에도 김 회장은 시외버스를 타고 전국의 1백50개 동아출판사 특약점을 돌며 재기를 노려왔고 최근 『대입정보 시리즈』(참고서)와 『내일은 1학년』(유치원 교재)를 발간, 판촉을 위해 전국으로 뛰고있다.
한 달에 최소한 두 세 번은 2박3일간의 지방 출장에 나서는데 이때는 하루 평균8백km의 강행군을 하고있다.
김 회장의 건강 비결은 걷는 것과 단식. 과거에는 벤츠·BMW를 타고 골프를 즐겼으나 지금은 방배동의 전세 아파트에서 역삼동 사무실까지 5km를 걸어나와 사우나를 한 후 출근한다. 아직도 안경을 쓰지 않고 글을 읽고 있으며 아들 김씨와 함께 출판인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그의 꿈이다.
『죽으면 관속에 동아전과와 동아원색 세계대백과 사전을 넣어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해두고 있습니다』
자신이 4O여년간 키워놓은 회사가 이제는 경쟁 상대가 되 버린 김 회장은 새 출판사를 대를 잇는 알뜰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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