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한국 경제를 어떻게 뒤흔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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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등을 기대한 한국 경제에 돌발 악재가 나타났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이미 금융 시장은 불안감에 들썩인다. 과거 전염병이 한국 경제를 할퀴고 간 전례가 있어서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이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여파로 중국 여행 취소율이 100%에 육박하는 등 관련 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여파로 중국 여행 취소율이 100%에 육박하는 등 관련 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신종 코로나 관련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와 같이 이번에도 제한적이지만 일정 부분 (우리 경제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사스, 메르스 여파가 있던 해의 주요 경제지표를 보면 전염병이 경제에 꽤 큰 생채기를 냈음을 알 수 있다.

사스 여파로 대중 수출 타격…2003년 1, 2분기 마이너스 성장

사스는 2002년 11월 발병해 2003년 초부터 한국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여파는 성장률에 곧바로 반영됐다. 2002년 3분기와 4분기에 2%, 1.1%를 기록했던 전 분기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3년 1분기에 -0.7%, 2분기 -0.2%로 주저앉았다. 고공 행진을 하던 수출도 5월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해 월별 수출은 1~4월에 모두 전년 대비 20% 안팎의 증가율을 보였는데, 5월 증가율은 3.5%에 그쳤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성장률이 급감한 가운데 그해 4월 국내에도 첫 사스 환자가 발생하면서 악영향이 커진 탓으로 풀이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03년 한국의 5월 수출증가율이 일시적으로 크게 위축한 것을 모두 사스 영향이라고 가정할 경우 2분기 GDP 성장률을 1%포인트(연간성장률 0.25%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내수 상황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도 2003년 2월에 전월 대비 7.8% 급락하는 등 불안한 흐름을 보였다. 2003년 전체 성장률은 3.1%를 기록했다. 2002년(7.7%)보다 4.6%포인트나 급락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메르스로 소비 뚝 떨어져

메르스는 내수를 크게 위축시켰다. 그해 5월 국내 첫 환자가 나타났는데 다음 달인 6월 소매판매는 전달 대비 3.2% 줄었다. 4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었다. 그해 수출은 메르스와 관계없이 부진한 상황이었다. 1년 내내 뒷걸음질 쳤다. 수출이 안 좋은데 내수 마저 흔들리며 그해 1분기 0.9%를 기록했던 전기 대비 성장률은 2분기에 0.2%로 고꾸라졌다.

관광객 감소에 따른 소비 여파가 꽤 길게 이어졌다. 그해 3분기 입국자 수는 1년 전보다 28.3% 줄면서 비거주자가 국내에서 사용한 카드 금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7% 감소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그해 7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메르스의 충격이 생각보다 컸다”고 말했다. 그해 성장률은 2.8%였다. 1년 전(3.2%)보다 0.4%포인트 줄었다. 메르스가 당시 성장률을 0.2~0.3%포인트 끌어내렸다는 게 정부와 연구기관의 추산이다.

체력 떨어진 중국·한국 경제…바이러스 버텨낼까  

2003년과 2015년의 경제 지표 부진을 온전히 사스와 메르스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2003년에는 카드 사태 여파, 2005년에는 심각한 가뭄 같은 다른 악재도 있었다. 우한 폐렴이 어느 정도 확산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의 충격이 과거 전염병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 경제다. 신종 코로나는 중화권을 중심으로 퍼졌다는 점에서 사스와 유사하다. 당시 중국 경제 성장률은 정부가 사스를 공식 인정하기 전인 2003년 1분기 11.1%에서 2분기 9.1%로 뚝 떨어졌다가 하반기에 10%로 회복했다. 메르스의 경우 중국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상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상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뉴스1]

이번에 중국 경제가 사스 이상의 큰 타격을 입을 거란 전망이 제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전문 연구기관인 플리넘을 인용해 중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기존 전망인 6%대에서 4%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경제의 덩치와 영향력은 사스 당시보다 훨씬 커졌다. 2003년 세계 GDP 대비 중국의 GDP 비중은 4.3% 수준이었지만 지난해는 16.3%에 이른다. 특히 몸집에 비해 중국의 경제 체질은 약해졌다. 한국은행은 2일 내놓은 해외경제포커스에서 "중국 경제는 2003년의 경우 투자가 약화된 소비를 보완했으나, 현재는 투자가 소비 둔화를 상쇄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평가했다.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 한국은 직격탄을 맞는다. 한국 경제의 중국 '쏠림'은 사스 당시보다 훨씬 커졌다. 한국 수출의 중국 비중은 2003년 18.1%에서 지난해 25.1%로 늘었다. 게다가 한국 경제의 체력 역시 과거보다 크게 저하됐다. 지난해 성장률은 2%에 턱걸이했다. 전체 산업생산은 지난해 역대 최저 증가율을 기록했고, 수출은 지난달까지 14개월째 내리막이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전체 산업생산, 소매판매, 설비투자가 두 달째 동반 증가하는 등 반등의 조짐이 나오기 시작할 때 신종 코로나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사스 당시 중국 경제는 고도 성장 시기였는데 지금은 중국 경제 자체가 2003년 대비 크게 부진하다”며 “만약 사스 수준으로 중국의 성장률이 줄면, 한국 교역의 위축이 불가피하고 그렇게 되면 사스 이상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국 역시 당시보다 체력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라며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거두고 사스 이상의 타격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렬 광운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는 “당분간 수출입 같은 물적 교류 뿐 아니라 인적 교류 등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러면서 소비심리 등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당장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가 나타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교역ㆍ교류 위축에 대비하면서 경제 심리가 지나치게 꺼지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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