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철수' 미국인 200명 강제격리 안한다…"개인 권한 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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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에 머물던 미국인 200여 명을 태운 국무부 전세기가 2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의 마치 공군기지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한에 머물던 미국인 200여 명을 태운 국무부 전세기가 2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의 마치 공군기지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보건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 머물다 귀국한 미국인 약 200명을 집단 격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28일(현지시간) 밝혔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기자회견 #확산 가능성 낮고 과도한 개인 권리 제한 #한국·프랑스·영국·호주는 강제 격리 방침

당초 귀국자들은 미 공군기지 내 숙소에 일정 기간 머물 것으로 알려졌으나, 보건 당국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들을 강제로 격리하지 않을 방침을 밝혔다. 귀국자들이 미국 대중에게 질병을 옮길 위험이 "매우 낮다"는 이유에서다. 강제 격리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측면도 고려됐다.

미 국무부가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마치(March) 공군기지에 내린 귀국자들은 기지 내 숙소에서 지낼 의무는 없다고 CNN이 보도했다.

다만,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관계자들은 귀국자들에게 바이러스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3일간 기지 안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고, 대부분 이에 동의한 상태라고 CNN은 전했다.

만약 3일이 지나기 전 귀가를 원하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정부 당국자는 "행정부 내 최고 의사 결정 단계에서 논의할 일"이라고 답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 최고위층이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귀국자들은 3일간 증상을 보이지 않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지 않을 경우 귀가한 뒤 최대 14일간 보건 당국의 추적 관찰을 받게 된다.

CDC 크리스 브래덴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이 감염병이 미국 일반 지역사회에 끼칠 위험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CDC는 대중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귀국자는 기지 내에 잔류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래덴 박사는 "개인별 격리제도를 도입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크리스 브래덴 박사가 연방 및 지역 보건 전문가들과 2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머물던 미국인 200명을 태우고 돌아온 미 국무부 전세기가 이날 캘리포니아주에 착륙했다. [AFP=연합뉴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크리스 브래덴 박사가 연방 및 지역 보건 전문가들과 2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머물던 미국인 200명을 태우고 돌아온 미 국무부 전세기가 이날 캘리포니아주에 착륙했다. [AFP=연합뉴스]

브래덴 박사는 "귀국자들을 보호하면서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제약을 최소화하면서 질병 검사는 신중하게 해 모두가 안전할 수 있도록 균형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균형의 문제"라면서 "이동을 제한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연방 정부의 격리 명령 없이도 그런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보건 당국이 강제 격리 철회 방침으로 선회한 것은 탑승객 건강 상태가 대체로 양호하다는 이유도 있다. CDC는 국무부 전세기가 우한 톈허국제공항을 출발해 캘리포니아에 착륙한 직후까지 탑승객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검사와 관찰을 시행했다.

우한 공항에서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 미국과 중국 의료진이 두 차례 검사했다. 비행 중, 중간 급유를 위해 기착한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공항에서 두 차례, 그리고 캘리포니아 착륙 직후에도 검사가 진행됐다. 검사는 체온 측정과 호흡기 증상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집단 강제 격리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밸더빌트대병원 감염병 전문가인 윌리엄 쉐프너 박사는 CNN 인터뷰에서 건강한 사람들이 탄 항공기를 통째로 강제 격리하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스와 지카 바이러스 때도 개인을 격리했지 항공기 전체를 강제 격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아서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감염병 전문가인 폴 오피트 박사는 인플루엔자를 예로 들었다. 항공기 내 승객 한 명이 인플루엔자에 걸렸다고 승객 전원을 집단 격리하지는 않는다면서 당국 조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단 격리는 "이 바이러스를 특별히 두려워해야 하고, 인플루엔자보다 더 많은 사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내보내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한 해 약 3만5000명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한다. 현재까지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5명이며, 숨진 사람은 없다.

미국은 강제 격리 대신 자발적 3일 격리를 권유하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호주, 영국 등은 우한에서 자국민을 전세기로 이송한 뒤 최대 14일간 강제 격리할 방침을 밝혔다.

한국은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들을 정부 관련 시설 두 곳에서 최대 14일 동안 분산 격리하기로 했다.

아녜스 뷔진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우리 영토에 감염을 막기 위해 귀국자 전원은 보건 전문가 관찰 아래 14일간 한 곳에서 격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우한에서 데려온 호주인들은 서부에서 멀리 떨어진 크리스마스섬에서 최대 14일 머물러야 한다"면서 "호주의 공공보건을 우선순위에 놓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각국 정부가 강제 격리까지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경로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현재 가장 불명확한 점은 무증상 감염자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 여부라고 CNN은 전했다. 중국 보건당국은 무증상 환자가 감염시킨 사례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러지감염병연구소장인 앤소니 파우시 박사는 CBS 인터뷰에서 "무증상 환자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믿을만한 과학적 데이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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