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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년기획④]美영향력 줄어든 EU선 ‘핵’ 가진 프랑스가 큰 형님

중앙일보

입력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에 지금 세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선의 해인 2020년 미국의 움직임과 이에 맞서는 중국, 일본, 유럽의 대응 방향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유럽학회 회장을 역임한 홍기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가 28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한국유럽학회 회장을 역임한 홍기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가 28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해 한국유럽학회 회장을 역임한 홍기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사진)는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으로 2020년 가장 타격을 받을 유럽 국가로 독일을 꼽았다.

'영원한 동맹'일줄 알았던 미국과 유럽의 운명은

지난 28일 중앙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에 대한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압박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전술' 중 하나"라며 "나토의 붕괴나 미국의 나토 탈퇴를 예상하는 것은 무리"라고 예견했다. 다음은 홍교수와의 일문일답.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기조로 2020년 가장 타격을 받을 유럽 국가는 어디이며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미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통상정책을 통해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고 미국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추구해 왔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미국 북동부 주변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지칭하는 '러스트 벨트 (Rust Belt)'에서 자동차산업과 철강산업을 회복시키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결과기도 하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중국과 더불어 독일 등 EU 회원국들을 우선순위의 협상대상국으로 지목했다. 실제 미국의 대EU 무역적자는 서비스를 제외한 상품교역에 집중돼 있고, 국가별로는 사실상 독일에 대한 무역적자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미국이 EU를 대상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자동차 등 독일산 수입품에 대한 제한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외 또 타격을 받을 국가가 있다면.
2019년 4월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으로부터 농산물 문제를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시작할 권한을 위임받았다. 향후의 무역협상이 분야별 협상이 아닌 일괄타결방식으로 진행돼 농산물이 협상대상이 될 경우 프랑스의 타격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미국은 나토 분담금 비율을 22%에서 16%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당장 어떤 영향이 있을까.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정책을 추진하면서 EU내에서는 ‘전략적 자율성’ (strategic Autonomy)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 전임 올랑드 대통령은 미국 대외전략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유럽연합 내 정치적 단결을 공고히 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화두를 제기했다. 독일도 미국이 나토 동맹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에 대한 신뢰성에 불안을 표명하면서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핵우산 제공 가능성을 거론한 바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나토 분담금 삭감은 EU 차원의 전략적 자율성 제고를 위한 공동안보국방정책 (CSDP)의 강화로 귀결될 수 있다. 
홍기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가 2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최정동 기자

홍기준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가 2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최정동 기자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나토에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나토의 분담금 협상 전망은. 
트럼프는 회원국 별로 국내총생산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4%까지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14년 나토는 오는 2024년까지 국방비를 GDP 2% 수준으로 올리기로 합의했으나 현재 이를 충족한 나라는 28개국 중 폴란드 (2%), 라트비아 (2.01%), 리투아니아 (2.03%), 루마니아 (2.04%), 에스토니아 (2.14%), 영국 (2.14%), 그리스 (2.28%), 불가리아 (3.25%), 미국 (3.42%) 등 9개국뿐이다. 나토 주요 국가인 독일 (1.38%), 프랑스 (1.84%), 이탈리아 (1.22%), 스페인 (0.92%), 캐나다 (1.31%)는 2%에 못 미치고 있다. 미국이 제시한 4%는 협상 전략상의 수치일 뿐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본다. 미국이 한국에 제시한 5배 증액도 협상력 제고를 위한 과장된 수치라고 본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통상 협상을 연계하여 지속적으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과 나토의 분담금 협상에 차질이 생길 경우 나토의 미래는.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청하면서 동맹국과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나토 탈퇴 혹은 나토의 붕괴를 예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미국은 여전히 유럽 안보를 위해 나토에 대한 기대가 크고 대서양동맹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관여를 더 많이 해왔다. 다만, 2018년 11월 프랑스 주도의 유럽군 창설 움직임에 부정적 시각을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이 분담금 증액을 요구함에 따라 프랑스 주도로 유럽안보의 정체성 회복이 가속화되면서 유럽과 미국 간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시리아에서 철수했고, 서아프리카에서도 철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추가로 군을 철수할 가능성과 미국의 속내는.
미국이 추가로 군을 철수한다면 독일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트럼프는 독일 주둔 미군 1만명을 폴란드에 재배치할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고 폴란드는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독일이 더 많은 방위비를 내도록 하기 위한 압박전술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 폴란드에 미군기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비용부담이 증가하는데 이는 트럼프의 기본 전략과 배치돼 실행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유럽안보에서 가장 역할이 커질 국가는.
유럽국가 중 유일하게 핵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라고 본다. 프랑스는 드골주의에 입각한 유럽안보전략을 구사해왔다. 전통적으로 나토를 축으로 하는 유럽안보보다는 EU가 안보 영역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그래서 프랑스는 독일과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2016년 6월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안보협정’ (European Security Compact)을 공동으로 제안했고 여기엔 방산협력을 포함해 EU 차원의 다양한 군사역량 강화를 추진할 것을 명시했다.
유럽식 다자안보체제를 동북아시아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관점에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메커니즘 혹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남북통일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과제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안보이익이 일치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은 끊임없이 긴장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미·중 간의 패권경쟁은 한반도 통일에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미·소간 패권경쟁이 치열했던 냉전시대에 범유럽다자안보협력 메커니즘인 ‘유럽안보협력회의’ (CSCE)를 만들어 독일이 통일되고 냉전체제를 극복한 유럽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럴려면 북핵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하지 않나. 
그렇다. 동북아지역에서 유사한 다자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현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상태에 있지만, 북미간의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가 해결된다면 다음 수순은 6자회담의 복원을 통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달 14~16일 열리는 뮌헨안보회의에서 북·미간 접촉이 의미있는 성과룰 낼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북·미협상과 별개로 남북간 경제협력을 추진중이다. 안보차원에서도 유럽처럼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대책을 신중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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