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어린이에게 왜 車 광고를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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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어린이용 TV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에 방영되는 광고를 유심히 본 적이 있나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장난감 광고가 제일 많지만 그중엔 자동차 광고도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97년부터 '씽씽이'라는 만화 캐릭터를 만들어 교통안전을 잘 지키자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왜 자동차 살 돈이 없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할까요?

어린이들이 지금 당장은 자동차를 살 수 없지만 10년, 20년 후에 직장에 들어가고 엄마.아빠가 되면 자동차를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이때 어릴 때부터 호감을 느낀 회사의 자동차를 살 확률이 높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한다고 말합니다. 기업들이 벌이는 이 같은 '키즈(Kids.어린이) 마케팅'을 '퓨처(Future.미래)마케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거나 여러 가지 행사를 여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참여했던 행사나 교육 내용이 재미있고 유익해 그 회사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히 그 회사가 만드는 물건을 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씽씽이 광고를 본 사람의 92%가 광고에 호감을 나타냈고 그중 82%가 현대자동차를 좋아하게 됐다고 합니다. 어떤 어린이들은 고무줄 놀이를 할 때 씽씽이 광고 주제가를 부르기도 한답니다.

제품을 사게 하는 효과뿐이 아니에요. 어린이들이 자라서 직장을 선택할 때 자신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회사를 직장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많아요.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선 똑똑하고 유능한 직원을 뽑는 게 중요한데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으면 그런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겠죠.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죠? 어린 시절의 버릇은 세월이 흘러도 고치기 힘든 것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잠재 의식 속에 남아 현재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죠.

그런 점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자동차 '카니발'의 예를 들어볼까요. 기아자동차는 지난 7월부터 만화 주인공 둘리를 카니발 광고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리는 83년에 처음 탄생해 당시 모든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은 만화 주인공이죠. 기아자동차가 노리는 것은 당시에 둘리를 좋아하던 어린이들이 20년 후인 지금은 카니발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진 어른이 됐다는 점입니다.

자동차 회사뿐만이 아닙니다. BC카드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건전한 카드 사용에 대한 교육을 하거나, 삼성전자가 어린이들에게 무료 컴퓨터 교육을 하는 것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나중에 이 회사의 제품을 많이 이용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할인점 이마트 매장에는 매달 1만여명의 어린이들이 견학을 옵니다. 이곳에 온 어린이들은 물건을 사는 법과 에스컬레이터나 계산대를 이용하는 방법 등을 배웁니다. 물론 어린이들이 할인점을 방문하면 매장은 보통때보다 더 복잡해집니다. 이마트가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행사를 벌이는 건 어린이들이 이마트를 좋아하고 나중에 많이 오게 하려는 거죠.

요즘은 어린이들이 물건을 고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키즈 마케팅이 직접적인 구매 효과를 거두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자녀의 수가 줄어들면서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주부인 어머니의 의견이 더 중요해졌고, 2000년대엔 아이들의 의견도 제품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TV.인터넷.잡지 등이 발달하면서 어린이들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도 한가지 이유죠.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면 어린이들의 중요성은 더 커집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비용만큼은 아끼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죠? 경기가 나빠 다른 데 쓸 돈이 없더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사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각 회사들은 팔려는 물건이 '아이들을 위한 제품이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어린이 고객은 결국 그 어린이의 부모까지 그 회사의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오니까요.

결론적으로 기업들은 키즈 마케팅으로 제품 판매는 물론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겁니다. 이런 활동을 나쁘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강화할 필요가 있죠. 기업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대상 경제교육이나 소아암 환자 돕기 활동, 무료 컴퓨터 교육, 교통안전 캠페인 등 대부분의 활동이 공익적 성격을 띱니다.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활동이기 때문에 어린이와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주로 하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이 어린이들을 단순한 돈벌이의 도구로 보는지, 어린이들의 지적.육체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 따져 보는 일이겠죠.

박혜민 기자

<사진설명전문>
이마트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병아리 교실'이라는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법과 돈에 대한 개념을 배우고 각종 동식물이나 수산물 등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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