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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2차 대학살’ 검찰 인사…훗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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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설마 이렇게까지야 할까 했는데, 역시나 순진한 기대였다.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 8일의 ‘1차 대학살’ 검찰 인사를 하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아니면 주요 길목에 자기편을 배치하고도 불안해서인지 끝내 ‘2차 대학살’ 인사를 감행했다. 두 차례의 숙청(肅淸)으로 검찰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법무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강변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그 말을 국민이 곧이곧대로 믿을 것 같은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이 인사를 계획하고 실행한 모든 이는 국가 사법행정의 틀을 허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훗날 반드시 죄과를 물어야 할 것이다.

정권 관련 수사 담당 차장검사 모조리 교체 #‘살아 있는 권력’ 수사 꿈도 꾸지 말라는 것 #법치 틀 허물어뜨린 죄의 대가 치르게 해야

어제 발표된 2차 인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의 차장검사 4명 전원과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무마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동부지검의 차장검사가 교체됐다. 좌천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자리로 간 경우도 있었으나 인사 조처로 인해 수사 책임자가 모두 바뀌었다. 수사팀에서 추가 소환이나 수색을 시도할 때 차장검사가 결재를 미루거나 거부함으로써 얼마든지 수사를 막을 수 있다. 기소에 반대하거나 공소장에 포함될 혐의를 축소할 수도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검사 자리에는 통상의 예와 달리 서울중앙지검 부장 경력이 없는 이가 발탁됐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이어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까지 모두 호남 출신 일색(一色)이 됐다.

이제 새로운 정권 관련 비리에 대한 수사 착수는 꿈도 꾸기 어렵게 됐다. 차장검사 선을 간신히 통과한다 해도 친정권 인사로 교체해 앉힌 지검장이 다시 가로막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최강욱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재가하지 않으며 수사팀을 괴롭혔다. 현 정권과 관련된 비리는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와 다를 것이 없다.

두 차례 검찰 인사는 보복적 성격이 강하다. 1차에서는 권력의 뜻을 순순히 따르지 않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들이 모조리 좌천됐다. 2차에서는 현 정부 관련 수사를 벌인 곳의 중간 간부와 이를 조율해 온 대검의 중간 간부들이 거의 다 자리에서 쫓겨났다. 대검 중간 간부들을 유임시켜 달라는 윤 총장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됐다. 대통령이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주문했는데, 막상 그 일이 벌어지자 ‘응징’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인사를 했다.

이번 인사는 법무부 인사 규정 위반이다. 법무부 예규에 차장검사 필수 보직 기간이 1년으로 돼 있는데, 지난해 8월에 부임한 차장검사들도 다른 곳으로 보냈다. 법무부는 직제 개편이 이뤄졌기 때문에 필수 보직 기간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꼼수’로 국민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드러난 권력의 죄상을 이런 식으로 덮으려 드는 것은 사법 방해다. 미국 같으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된다. 한순간 많은 국민을, 장기간 일부 국민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죄를 감출 수는 없다. 역사가 숱하게 증명해 온 진리다. 정직하지 않은 정권은 언젠가 국민의 심판을 받으며, 권력의 무리수는 효용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