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들도 靑 비난 "조국 청원 지시는 인권위 독립성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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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인권침해를 조사해 달라’는 국민 청원을 공문으로 보내 논란이 인 가운데, 15개 인권단체가 청와대를 강하게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인권운동사랑방ㆍ다산인권센터ㆍ광주인권지기활짝 등 15개 단체는 15일 공동성명을 통해 “인권위는 청와대가 조사를 지시하는 하부 행정기관이 아니다. 인권위에 국민 청원을 전달하는 공문이 발송된 자체만으로 인권위의 독립성이 침해된 것”이라고 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15개 인권단체가 15일 공동 발표한 성명서.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캡처]

인권운동사랑방 등 15개 인권단체가 15일 공동 발표한 성명서.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캡처]

이어 “청와대는 사법부나 입법부 또는 각 방송사에 관련된 청원은 청와대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여 왔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비서실장(노영민) 명의로 공문을 보내며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지시’로 보이게끔 조치했다”고 했다.

인권위에 대해서도 “이 사안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 단호한 입장을 밝혀야 하지만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청와대가 공문 발송이 착오였기 때문에 반송했다는 내용이 알려진 날에라도 이 같은 행동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공문 보낸 청와대, 반송한 인권위

앞서 청와대는 지난 13일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조사해달라는 국민 청원과 관련해, “청원인과 동참하신 국민들의 청원 내용을 담아 대통령비서실장 명의로 국가인권위에 공문을 송부했다”(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고 밝혔다. 이어 “국가인권위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접수된 청원내용이 인권침해에 관한 사안으로 판단되면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고도 했다. 이 청원은 지난해 10월 15일 올라왔고, 한 달간 22만6434명의 동의를 받아 청와대 공식 답변 요건을 채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는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는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발표가 나오자 일각에선 청와대가 독립기관인 인권위에 공개 압력을 넣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튿날(14일) 인권위가 “청와대가 ‘국민청원’ 관련 문서가 착오로 송부된 것이라고 알려와 반송 조치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청와대가 ‘하명’ 비판을 의식해 발을 뺀 것 아니냐는 것이다.

靑 “직원 착오로 발송 실수”

논란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5일 “직원의 단순 실수로 추가 공문이 발송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인권위에 발송한 공문 중 하나가 발송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채 실수로 갔고, 그 사실을 확인해 폐기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해당 청원의 답변 시한인 13일을 엿새 앞둔 7일 인권위에 청원 답변을 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을 담은 ‘협조’ 공문을 보냈다. 인권위는 당일 유선을 통해 ‘인권위는 독립기구여서 이와 같은 답변이 어렵다’는 뜻과 함께 ‘청원 내용을 이첩하면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답을 했고, 이튿날 같은 내용의 정식 공문을 회신했다고 한다.

“청원 내용을 이첩하면 조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청와대 실무 직원이 내부 업무시스템에 ‘이첩’ 공문을 예비로 올려뒀는데, 이를 강 센터장의 답변 녹화(9일) 직후 실수로 발송해 바로 폐기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첩 공문은 협조 공문과 달리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만큼 무게감이 더 크다. 청와대는 당일 내부에서 충분한 협의 없이 나가서 인권위에 철회를 요청했고, 인권위도 유선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이어 13일 강 센터장의 답변이 공개된 직후, 청와대는 인권위로부터 ‘잘못된 공문이 기록으로 남았으니 절차를 확실히 하자’는 취지로 철회 공문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에 청와대는 9일에 발송한 공문을 철회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즉, 종합하면 7일에 협조 공문을, 9일에 이첩 공문을, 13일에 이첩 공문 철회 요청 공문을 보낸 것이다.

靑 해명에도 남는 의구심
다만 청와대의 해명에도 의구심은 남아 있다. 협조 공문이든 이첩 공문이든 공공기관이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자체가 압박일 수 있어서다. 인권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또 인권위에 진정을 넣는 건 당사자가 아니라도 제출이 가능한 부분이라, 청와대가 굳이 비서실장 명의로 나설 필요도 없다.

청와대가 그간 다른 청원 답변을 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킨 것과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3월 포항지진 피해에 대한 특별법 제정을 요청하는 청원이 20만명 이상 동의를 얻었을 때도 청와대는 “법 제정은 국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정부가 답을 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이 밖에도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답변 드리기 어렵다”(‘아동성폭행범 감형 판사 파면’ 청원)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김경수 재판 판사 사퇴’ 청원) 등의 답변을 했었다.

또 청와대가 답변을 공개한 날(13일)은 공교롭게도 검경수사권조정안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된 날이자, 친문 성향의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가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취임한 날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인권 유린이라며 비판해온 인사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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