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구하기 논란 탓? 인권위 "靑, 공문 착오 알려와 반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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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청와대가 보내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공문을 반송했다고 14일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조 전 장관과 가족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인권위 조사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 차원에서 인권위에 조사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13일 밝힌 바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우리 위원회는 청와대가 '국민청원' 관련 문서를 착오로 송부했다고 알려와 전날(13일) 오후 반송했다"고 밝혔다. 문서를 보낸 게 착오라는 뜻인지, 문서 구성에 착오가 있었다는 뜻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靑, 답변 한달 미룬 뒤…"인권위에 공문 보냈다"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 소통센터장이 지난해 10월 '조국 장관 임명 촉구 및 임명 반대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대한민국 청와대 유튜브 캡처]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 소통센터장이 지난해 10월 '조국 장관 임명 촉구 및 임명 반대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대한민국 청와대 유튜브 캡처]

지난해 10월 15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인권위가 조국 장관과 가족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무차별 인권 침해를 조사할 것을 청원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공식 답변 요건인 20만명 이상(22만6434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조국 교수 가족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검찰의 무차별 인권 침해가 있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철저하게 조사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 청원 내용에 대한 검토를 거쳐 13일 그 내용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이 청원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위해 답변을 한 달간 연기하오니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안내한 뒤 다시 한달이 지나서다. 이날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청원 내용을 담아 노영민 비서실장 명의로 인권위에 공문을 송부했다"고 청와대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인권위 "靑서 공문 받았지만 진정서는 아냐"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강 센터장은 "인권위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접수된 청원 내용이 인권 침해에 관한 사안으로 판단되면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노 실장 명의로 공문을 보낸 것과 관련해서는 "인권위가 '참고로 인권위법 제32조 제1항 제6호에 따라 익명으로 진정이 접수될 경우 진정사건을 각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명으로 진정을 접수해야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13일 오후 기자들에게 "청와대로부터 공문을 받았으나 진정서를 제출받은 것은 아니다"며 "내부 절차와 관련법에 따라 공문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진정이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사건이 접수되거나 조사에 착수한 건 아니다"면서도 "추가로 진정이 들어오면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보 성향 인사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청와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야권에서는 "지난해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었을 때도 '지켜보겠다'던 청와대가 무엇 때문에 이 시점에 인권위에 송부하는가"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조 전 장관이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청와대가 진정하는 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든 인권위를 고위 공직자 비리 세탁에 이용하려는 나쁜 일"이라고 했다.

진보 성향 인권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씨도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청와대가 인권위에 뭔가 조사하라거나 조사하지 말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인권위 독립성 침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에 지금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이런 식의 노골적인 독립성 침해 시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권위는 진정이 없더라도 직권으로 사건을 조사할 수 있으나 어떤 사건을 조사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인권위의 판단이어야 한다. 그게 독립성"이라며 "인권위 독립성에 관한 어록을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들었다면 격노하고도 남았을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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