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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 누명 윤씨…"특별법 만들어 이춘재 처벌해야"

중앙일보

입력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씨. [중앙포토]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씨. [중앙포토]

"현재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고 하니 기쁩니다"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을 복역했던 윤모(53)씨는 14일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밝았지만, 속내는 복잡한 듯했다. 그는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지만 재심이 쉬운 게임은 아니지 않으냐. 빨리 좋은 결과(무죄)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긴 싸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과거 윤씨를 수사한 경찰관들은 과거 윤씨를 불법 체포하고 감금과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과거 경찰관들이) 국민 앞에서 사죄하면 용서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할 생각은 있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이춘재 자백 신빙성 인정"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의 한 가정집에서 A양(당시 13세)이 숨진 채 발견된 일이다. 윤씨는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하다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의 자백으로 진상이 밝혀지자 윤씨는 재심을 청구했다.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한 윤모씨(52)의 재심청구서. [뉴스1]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한 윤모씨(52)의 재심청구서. [뉴스1]

수원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김병찬)는 14일 윤씨가 낸 재심 청구 재판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춘재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는 취지의 자백을 했고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이춘재의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재심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 윤씨에 대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며 "재심 사유가 있으므로, 재심을 개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음 달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검찰과 변호인의 입증 계획을 듣고 재심에 필요한 증거와 증인을 추리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본 재판은 3월 쯤 시작될 예정이다.

윤씨 측 "하루속히 무죄 판결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윤씨의 재심을 담당하는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이주희 변호사도 "이번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은 재심청구서 제출일로부터 2개월 만에 내려진, 이례적인 빠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공판준비기일에서 이춘재와 국과수 감정인, 1989년 당시 윤씨를 수사한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또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범인의 체모 2점에 대해 감정신청을 하는 등 과거 수사과정의 불법행위와 국과수 감정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할 것"이라며 "윤씨가 하루속히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박준영 변호사는 "이춘재의 자백은 물론, 당시 수사과정의 문제(가혹 행위)와 잘못된 국과수 감정서도 윤씨가 무죄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며 "과거 수사와 재판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재판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춘재 조사보고서를 보니 이춘재가 윤씨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도움이 되는 부분은 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더라"며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진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법정에 출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씨 "특별법 만들어 이춘재 처벌받길"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 [사진 JTBC 캡처]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 [사진 JTBC 캡처]

윤씨는 이춘재에게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경찰은 현재 이춘재를 14건의 살인사건과 21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입건했다.

그는 "(이춘재의 범행은) 인간이 할 도리가 아니다"며 "초등생부터 70대 노인까지, 안타까운 생명이 너무 많이 희생됐다. 여기에 당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피해를 본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윤씨는 "현재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 이춘재를 처벌할 수는 없다"며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서 지금이라도 이춘재를 처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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