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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만 총통선거 D-1, 쪼개진 민심 “민주주의” vs “경제 살려야”

중앙일보

입력

11일 민진당 현 차이잉원 총통과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시 시장이 맞붙은 15대 대만 총통 선거가 치러진다. [로이터]

11일 민진당 현 차이잉원 총통과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시 시장이 맞붙은 15대 대만 총통 선거가 치러진다. [로이터]

15대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두고 연임에 나선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와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의 막판 선거 유세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차이 후보는 한 후보에 시장 자리를 내준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시와 수도 타이베이를 오가며 대만 민주주의 수호와 경제 성장 정책을 강조했다. 한 후보는 현 총통의 지난 3년 반 동안의 국정 운영 문제를 부각해 정권 교체를 촉구했다.

 한궈위 막판 유세...“차이잉원 내려오라”

국민당 한궈위 후보가 9일 대만 총통부 앞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국민당 한궈위 후보가 9일 대만 총통부 앞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9일 오후 5시. 대만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 대로에서 한궈위 후보의 막바지 유세가 시작됐다. 이날 밤 10시까지 진행된 유세에는 한 후보 측 추산 지지자 100만 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사회자의 구령에 맞춰 “차이잉원 내려오라”를 반복해서 외쳤다.

이날 유세는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 대만 유명 가수가 번갈아 가며 대중가요를 불렀고 노래가 끝난 뒤 “한궈위 당선”을 연호했다. 대형 스크린 5대를 통해 10여 대의 카메라가 지상과 공중에서 촬영한 영상이 교차 편집돼 방송되면서 현장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대만 유명 코미디언 2명이 사회를 맡았고 국민당 소속 대만 지방자치단체장 15명이 올라와 한궈위 지지 연설을 이어갔다.

9일 오후 대만 총통부 앞 대로변에서 진행된 한궈위 후보 유세 현장. 주최측 추산 100만 명의 지지자가 운집했다. [박성훈 기자]

9일 오후 대만 총통부 앞 대로변에서 진행된 한궈위 후보 유세 현장. 주최측 추산 100만 명의 지지자가 운집했다. [박성훈 기자]

무대 제일 앞 줄에 앉은 62세 린(隣)모씨는 중앙일보 기자에 “전날 밤부터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며 “대만이 다시 잘 살기 위해선 반드시 한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이 총통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한 일이 뭔가. 빈부 격차는 더 심해졌고 대만 기업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후보 유세 현장엔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50대 남성 왕(王)모씨는 “중국 정부의 일국양제(한 정부 두 체제) 움직임에 대한 우려는 없냐”는 질문에 “대만은 이미 중국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국가”라며 “홍콩처럼 중국에 속해있는 지방이 아니기 때문에 일국양제 현실화를 우려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중국을 적으로 삼은 차이잉원 정부 때문에 대만 경제만 악화됐다”며 “경제 회복을 위해 양안 관계 개선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일 오후 한궈위 후보 유세 현장 [박성훈 기자]

9일 오후 한궈위 후보 유세 현장 [박성훈 기자]

한궈위 후보는 이날 오후 9시쯤 무대에 올랐다. 그는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냐”고 세 차례 되풀이해서 물었다. 그러면서 “차이잉원은 국민을 속였다. 그는 토끼가 아닌 늑대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후보는 차이잉원 현 정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언론에 부당한 뇌물을 주며 여론을 호도했고 온라인 선거 캠페인을 위해 국민이 낸 세금을 사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후보의 선거 구호는 ‘안전한 대만, 국민이 부자 되는 나라’다. 한 후보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치며 투표를 통해 현 정부를 심판해줄 것을 촉구했다.

차이잉원 “끝까지 긴장 늦추지 말자“...국민당 비리 부각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9일 타이베이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P]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9일 타이베이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P]

차이잉원 후보의 막바지 유세는 수도 타이베이가 아닌 지방 표심을 공략하는 데 집중됐다. 지난 2018년 민진당의 텃밭으로 여긴 가오슝 시장 직을 한궈위 후보에 내준 것을 염두에 둔 듯, 가오슝 시민 표  공략에 공을 들였다.

지난달 말 마지막으로 공개된 대선 여론 조사 결과에서 차이 후보의 지지율은 54.9%로, 국민당 한궈위 후보의 22.1%를 32.8%p 앞섰다. 이변이 없는 한 차이 후보의 총통 재선이 유력하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평가다. 차이 후보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며 젊은 층들의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자칫 승리 가능성 때문에 젊은 층이 투표하지 않을 경우 득표 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후보 대변인이 10일 호주 간첩 사건에 대한 국민당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성훈 기자]

차이잉원 후보 대변인이 10일 호주 간첩 사건에 대한 국민당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성훈 기자]

차이 후보 사무실이 있는 민진당 임시 당사는 10일 오전부터 자원봉사자들과 지지자들로 붐볐다. 차이 후보 측은 이날 중국 정부가 대만에 침투시킨 간첩으로 알려진 왕리창(王立强)이 국민당 인사와 내통한 위챗 대화 기록을 입수했다며 한궈위 후보 측을 공격했다. 한 후보가 당선되면 중국의 대만 개입이 더 심해질 것이란 주장이었다.

차이 후보의 공약은 기본급 인상, 복지 확대, 육아 지원, 청년 고용 증가 등 청년층 지원에 맞춰져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 현재 258만 명이 친구로 등록돼 있다.

차이잉원 후보 사무실. 차이 후보 페이스북 응원 글들이 실시간 전광판에 올라오고 있다. [박성훈 기자]

차이잉원 후보 사무실. 차이 후보 페이스북 응원 글들이 실시간 전광판에 올라오고 있다. [박성훈 기자]

차이 후보를 지지하는 30대 남성 이(李)모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4마리용이라는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중 대만의 경제 성장률이 제일 높다”며 “경제 상황이 양호하고 대만 독립과 인권 보장 등으로 미국의 지지도 받는 차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막판 뒤집기 가능할까...“지지율 격차가 관건” 

공식 여론조사 결과 차이 후보가 한 후보를 최소 20%p 이상 앞서고 있지만 한 후보 지지자들은 이같은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궈위 후보 유세현장에서 만난 정(鄭)모씨는 “현재 여론조사는 정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며 “개표 결과는 정반대로 나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차이 후보 지지자인 20대 여성 양(養)모씨는 “국민당에서 조사한 결과에서도 15%p 이상 차이가 났다”며 “차이 총통의 재선은 당연하고 최대한 지지율을 벌려야 국민당이 더이상 거짓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유세 현장과 후보 사무실을 제외하면 수도 타이베이 시내는 조용하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거 벽보는 찾아볼 수 없고 후보 번호가 적힌 플래카드도 붙어 있지 않았다. 택시기사 천(陳)모씨는 “후보자 포스터를 붙이는 비용이 적지 않고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한 유세가 활성화돼 있어 거리 벽보가 사라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만 총통 선거 투표율은 2000년 82.7%로 정점을 찍은 후 2008년 76.3%, 2016년 66.27%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전체 투표 인원은 1900만 명 선. 투표는 11일 오후 4시에 마무리된다.

대만=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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