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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검사장 낙마 삼성출신' 류혁 "작은 동네 변호사로 살것"

중앙일보

입력

류혁 전 통영지청장이 2018년 10월 통영준법지원센터에서 업무설명회에 참석해 직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법무부 산하 통영준법지원센터]

류혁 전 통영지청장이 2018년 10월 통영준법지원센터에서 업무설명회에 참석해 직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법무부 산하 통영준법지원센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 뒤 첫 인사에서 검사장 임용을 추진했던 류혁(52·사법연수원 26기) 전 창원지검 통영지청장. 그는 "검찰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사건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전 지청장은 지난 8일 오전 검찰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2시간여 전 검사장 보직 면접을 봤지만 검사인사위의 반대 여론이 높아 검사장 문턱을 넘지 못했다.

류 전 지청장은 이날 오후 11시쯤 중앙일보에 전화해 “(인사위 결과 이후) 바로 변호사 재등록 절차를 마쳤다”며 “조그마한 동네 변호사로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는 서울 강북의 한 동네에서 월세 200만원 내는 사무실을 임대해 부인과 함께 법률사무소를 운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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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전 지청장은 “추 장관이 검찰국장으로 중용하려 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그는 “인사 검증 절차에 따라 비밀 유지 각서를 써서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며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 민정 라인도 전혀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권 고위 인사가 전화와서 ‘공직에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번호도 몰라 뒤늦게 회신했을 정도”라며 현 정권과 전혀 친분이 없음을 강조했다.

고양지청‧의정부지검 등에서 여러 차례 근무해 천경득(46)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인사담당 선임행정관이 추천했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만나본 적 없다”며 선을 그었다. 2004년 경기도 고양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천 행정관은 올해 4월 총선에서 고양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동부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감찰 무마 사건에서 유재수(56)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과 텔레그램을 한 사이로 밝혀지면서 이번 정부 ‘숨은 실세’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류 전 지청장은 정치권과 연결된 의혹을 부인하는 가운데 자신이 추구하는 검찰상은 확실하게 전했다. 그는 “윗사람을 들이받는 게 취미였는지 몰라도 아랫사람에게는 한 번도 모질 게 말해 본 적 없다”며 “‘나는 검사야’라며 눈에 힘주고 살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 이후에도 ‘공산주의’ 로펌에서 일했다”며 “모든 수익은 후배들과 동등하게 나눴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부산 기장군 부산추모공원에 안장된 고 김홍영 검사 묘비를 만져보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부산 기장군 부산추모공원에 안장된 고 김홍영 검사 묘비를 만져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 신념에 충실하게 앞으로도 조그마한 동네 변호사로 살 것”

그가 강조하는 검찰상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 직후인 지난달 9월 고(故) 김홍영 검사 묘소를 찾아 “향후 검사 조직문화와 교육‧승진제도를 제대로 바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한 부분과 맥을 같이 한다. 김 전 검사는 서울남부지검에 근무하던 2016년 업무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서른셋의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특수통‧기획통이라면서 기업이나 정치권 수사에만 매진하는 현재의 검찰 행태도 비판했다. 류 전 지청장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1년 미제’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검찰이 ‘소소한 사건’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제(未濟)는 검찰 내부에서 처리하지 못한 사건을 가리킨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2018년 미제사건은 6727건으로 9438건인 수원지검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삼성 출신’ 변호사를 정부가 요직에 앉히려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대검찰청의 프레임 짜기’라고 비판했다. 류 전 지청장은 “엔지니어(공대) 출신이라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제안에 삼성에 들어가 열심히 일했다”며 “그러다 돈도 다 포기하고 나와 검찰 조직에 다시 들어갔는데 한솥밥 먹었던 대검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서운하다”고 말했다.

최근 방송 중인 JTBC 드라마 '검사내전'의 한 장면. 제일 왼쪽은 김인주 진영지청장(정재성 분).누구에게나 존댓말을 하고 운동을 좋아해 류혁 전 지청장을 모델로 그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류혁 전 지청장이 2019년 9~12월 대표 변호사로 근무한 법률사무소는 '검사내전'에서 촬영 장소를 빌려줬다. [사진 JTBC]

최근 방송 중인 JTBC 드라마 '검사내전'의 한 장면. 제일 왼쪽은 김인주 진영지청장(정재성 분).누구에게나 존댓말을 하고 운동을 좋아해 류혁 전 지청장을 모델로 그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류혁 전 지청장이 2019년 9~12월 대표 변호사로 근무한 법률사무소는 '검사내전'에서 촬영 장소를 빌려줬다. [사진 JTBC]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뒤 사법시험…첫 부임지가 중앙지검

1992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류 전 지청장은 94년 사법시험과 삼성전자 입사시험에 동시에 합격한 뒤 97년부터 2005년까지 검사로 생활하다 삼성전자 법무팀으로 이직했다. 당시 30대 임원(상무보)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1년 6개월 만에 검찰로 복귀해 고양지청 부장검사와 금융정보분석원(FIU) 파견 검사 등으로 일한 뒤 지난해 8월 통영지청장으로 은퇴했다.

97년 초임지가 서울중앙지검이라 사법연수원 26기 사이에서는 성적이 최상위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아이디어도 많고 호탕한 스타일에 주변에 사람이 많다”며 “삼성 근무 시절에 이건희 회장 일가 상속 문제로 일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전 지청장의 아버지 류호근(82)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중앙인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았다.

김민상‧김수민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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