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당뇨와 뇌경색|손호영<가톨릭 의대 교수·내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얼마전 진찰실에서 아침 진료를 시작한 후 얼마 안돼 진료실이 막 북적대기 시작할 무렵 한 건장한 청년이 아버지인 50대 초반의 K씨를 등에 업은 채 진료순서를 무시하고 다짜고짜 진료실에 들어와 급하게 진료를 요청했다.
환자 K씨는 9년 전부터 당뇨병을 앓아왔으나 그간 식사조절도 하고 경구혈당강하제도 매일 복용하고 별탈 없이 지내오던 중 1주일전 갑자기 오른쪽 손발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게다가 발음조차 부정확해지는 등 증상이 점차 심해지더니 이젠 손발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할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얼른 혈압을 재보니 180/100㎜Hg의 고혈압이었다.
진찰 소견상 의식은 멀쩡했으나 언어구성이 되지 않는 불어증을 보이고 있었고 오른쪽 반신은 거의 마비되고 감각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다시 자세히 병력을 물어본 결과 과거에도 3∼4번 정도 잠시동안 손발의 움직이는 기능이 갑자기 약해지고 말이 둔해진 경험이 있었으나 곧 회복되곤 했다는 것이다.
당뇨병 환자로 혈압이 높고 일시적으로 과거 지금과 비슷한 증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K씨는 뇌혈전으로 인한 뇌졸증으로 진단됐다.
뇌졸중이란 뇌의 혈관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이 막히거나 터져 그 혈관에 의해 혈액공급을 받던 뇌 조직이 괴사되어 그 부위에 관련되는 신경증상이 발생하는 뇌혈관법이다. 뇌혈관이 막힌 경우는 뇌경색, 파열된 경우는 뇌출혈이라 부른다. 뇌경색은 뇌혈전과 뇌색전으로 구분된다.
뇌혈전은 주로 심한 뇌동맥의 죽상경화증으로 그 혈관이 막히는 경우며 뇌색전은 뇌 이외의 다른 부위에서 혈전이 떨어져 나와 혈류를 타고 이동, 뇌혈관에 도착한 후 그 혈관을 막는 경우로 주로 심장질환·부정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잘 발생된다.
사망률도 높고 후유증도 심각한 뇌졸중에 속하는 뇌혈전의 원인인 죽상경화증은 부지혈증·고혈압·비만·혈소판장애·당뇨법·흡연 및 음주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당뇨병의 경우 이들 위험인자를 잘 동반하고 죽상경화증 억제인자(HDL2)가 낮아져 뇌졸중 발생빈도가 정상인보다 훨씬 높다.
K씨가 경험했던 일시적인 운동·언어장애와 같은 증상은 사실 「일과성뇌허혈증」이라는 병으로 앞으로 뇌혈전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위험신호였다. 이 때문에 이를 신중히 받아들여 예방조치를 취해야 했으며 또 원칙적 치료방법을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도 치료를 임의로 해왔으며 고혈압의 치료를 등한시한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K씨는 즉시 입원하여 뇌 컴퓨터 단층 촬영한 결과 뇌혈전으로 인한 뇌경색임이 확인되었다.
현재는 물리치료와 언어치료를 열심히 하고 있다.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형편이지만 스스로 보행이 가능한 정도가 됐으며 당뇨법·고혈압 치료에도 적극성을 보여 좋은 효과를 얻고 자신의 회사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